꽃피는 오월. 학교 체육대회의 꽃인 2인 3각 단체 경기의 출발을 알리는 총성이 울렸다. 학급별 남학생 다섯, 여학생 다섯, 10명의 아이들은 발에 끈을 묶고 결승선을 향해 출발했다. 다른 반 아이들의 출발한 모습을 본 우리반 아이들은 당황했다. 다른 반 아이들은 걷는 것이 아니라 뛰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부터 학급 아이들이 체육대회 연습을 하자며 나를 졸랐다. 교사 첫 해. 처음 맡은 제자들이다 보니 애착이 크던 차에 아이들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니 나로서는 행복한 일이었다. 그래서 체육 대회에 좋은 결과를 얻고 싶었다.

하교 후에도 아이들은 남아서 체육 대회 준비를 했다. 단체 종목에 점수가 크기 때문에 단체 종목 연습을 많이 했었다. 그래서 2인 3각에는 자신이 있었던 우리반이었는데….

나 역시 당황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구령을 계속하였다.
“하나 둘, 하나 둘.” 우리반은 나의 구령에 맞추어 걸었다.

결승선에 들어오기까지 낯이 뜨거워지는 것을 감출 수가 없었다. 특히, 반장인 보라는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나의 구령을 따라하며 열심히 걸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2인 3각을 못해서일까? 다른 종목들도 최선을 다했지만 순위에 들지 못했다. 체육대회 폐회식. 전교 꼴찌 반에 ‘만두 10판’이 부상으로 주어졌는데, 우리반이 그 원치 않았던 영광을 안고 말았다.

다음날. 나는 아이들에게 소원을 적어서 내면 그중에서 가장 많이 나온 것을 무조건 들어 주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쪽지를 주고 친구들과 하고 싶은 활동이 있으면 써 내라고 했다. 여러 희망 사항이 있었지만 가장 많이 나온 것은‘ 학급 야영’이었다. 아이들에게 야유회나 단합 활동 정도를 해 줄 생각이었는데, 야영을 하자고 하니 당황스러웠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못 한다고 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하룻 밤 동안 데리고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나름 꼼수를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오늘 종례 시간 전까지 일정을 짜서 오도록 했다. 만약 알찬 계획이 되지 않으면 다른 활동으로 변경할 수도 있다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하는 힘을 길러 주고 싶다는 명목을 세웠다.

종례시간. 탁자 위에는 ‘1학년 6반 야영 계획서’ 라는 표지까지 만든 계획서가 있었다. 거기에는 시간대별로 활동, 모둠편성, 각자의 역할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되어 있었다. 이제는 칭찬을 해 주어야 했다. 계획서를 다 읽고 나서 고개를 드니 아이들이 환하게 나를 보고 있다.

귀여운 아이들.

그렇게 야영을 하게 되었다. 취사시간. 한마디로 난장판이었다. 김치찌개를 만드는 조는 도마위에 김치가 흘러내린다. 햄이든 캔은 따지지가 않는지 칼로 두드리고 있다. 삼겹살을 굽기로 한 조는 고기는 설익고, 기름은 흘러내리고…. 그나마 라면을 끓여 먹는 조의 냄비에서만 물이 팔팔 끓을 뿐. 시간이 지나도 진전이 없는 상황에 ‘과연 아이들이 저녁을 먹을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들었다.

교실 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 왔다. 학부모님들이었다. 아이들이 음식하는 모습과 나의 모습을 보시고는 웃으신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분명 가정 통신문에는 아이들의 안전뿐 아니라 모든 활동을 책임지고 잘할 테니 믿고 야영에 참가시켜 달라고 했는데….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나의 이런 생각과는 달리 무심한 아이들은 부모님들의 등장에 환호를 보냈다. 부모님들은 아이들을 위해 식사 준비를 도와 주셨다. 그 덕분에 저녁식사를 잘 마치고 게임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이 준비해 온 게임은 재미있었다. 선생님 맞추기 코너. 여러 선생님들의 흉내를 정말 똑같이 내었다. 아이들의 게임을 보며 나도 야영이 재미있어졌다. 게임을 마치고 담력 훈련을 했다. 선배교사의 조언을 들어 훈련 전에 미리 학교 곳곳에 미션지를 숨겨 두었다. 아이들이 미션지를 찾아오면 되는 것이었다.

활동이 마무리 되어갈 즈음 복도에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그곳으로 가보려고 하는데 모델이
꿈이라는 키 큰 현미가 교실로 들어왔다. “선생님 큰일 났어요. 반장이랑 부반장이 싸워
요. 빨리 나와 보세요!”

“뭐야!”

나는 소리를 지르고 현미를 따라 뛰어갔다. 야영은 아이들이 함께 하룻밤을 지내야 하기에 혹여 다툼이나 사고가 나면 절대 안 된다. 사전에 이와 관련한 교육을 했건만 적잖이 당황스럽고화가 났다. 현장에 도착해 보니. 반장인 보라와 부반장인 승진이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보라는 머리카락까지 산발이 되어 있었다. 기가 찼다.

“너희들을 믿고 한 야영인데, 이게 뭐냐. 전체 손들어.”

화가 난 나는 야영이라는 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이들을 벌준 것이다. 그런데 손을 들고 있는 아이들이 웃는다.

“웃는 애들은 뭐야!”

그럴수록 아이들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다. 특히 싸운 승진이와 보라도 같이 웃고 있다.

“와!, 하하하!”
“선생님. 이거 몰래 카메라예요.”
“누가 여자랑 주먹으로 싸워요”
“와 하하하!”

그러고 보니 승진이는 멀쩡한데 반장인 보라만 머리카락이 엉클어진 것도 이상했는데. 싸운 사실에만 집중하고 당황하다보니 그걸 전혀 눈치를 못 챘던 것이다. 아이들의 작전에 완전히 넘어 갔다. 그런 것도 모르고 벌을 세웠으니 나는 시치미를 뗐다.

“야, 샘이 진짜 속은 줄 알아? 속아 준 거지~~.”
“에이~. 속으셨잖아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더욱 커졌다. 선생님을 속이는 것을 성공했으니 얼마나 기뻤을까? 야영은 즐겁게 마무리되었다. 아이들에게도 좋은 추억으로 남았으리라.

학교에서 무엇을 하든 항상 아이들에게 늦게 전달했던 나. 다른 담임선생님들은 지난 해의 경험으로 미리미리 준비시켜 아이들을 편하게 해주었는데, 우리반 아이들은 다른 반 아이들보다 무엇이든 하루 이틀 늦었다. 그것이 마음에 걸려 하루는 아이들에게 솔직한 나의 생각을 말하였다.

“얘들아. 선생님이 미안해. 다른 반보다 항상 늦
어서 정말 미안해.” 그리고 선생님이 담임을 처음 맡다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이야기하였다. 나의 이런 고백을 들은 아이들은 “ 아니에요. 우린 선생님이 제일 좋아
요.”라고 크게 말해 주었다.

운이 좋아서일까? 그 해의 아이들은 진심은 항상 통한다는 것을 나에게 알려 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교사가 될 수 있었던 것에 항상 감사하며 이 길을 간다.

가끔 승진이나 보라, 그리고 첫 해 제자들이 SNS로 안부를 물어 올 때면 마음속으로 늘 말한다.

“그때 늦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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