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찬 소설가

나도 모르게 라이벌이라는 영어가 튀어나왔습니다. 나의 조그만 실수가 염포교가 없는 이 시대에는 죽음골로 몰지 않아 다행이지만 저렇게 시시콜콜 따지는 인간이 나오면 골치가 아픕니다. 저녁을 먹고 났으니 다시 재담할 시간입니다.

“신라 때 손순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난했지만 부부 사이에 의가 좋았고 눈이 먼 홀어머니와 아들을 데리고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점점 자라면서 버릇이 나빠졌습니다. 할머니가 먹을 과일은 물론이고 심지어 밥까지 빼앗아 먹는 것입니다. 할머니는 손자가 귀여워서 자신의 몸이 점점 쇠약해지는 것도 모르는 듯했습니다.”

어머니가 날로 쇠약해지자 이상하게 생각한 부부는 몰래 숨어서 보자 아들이 할머니의 먹을 것을 빼앗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눈이 안 보이는 할머니는 손자를 귀엽다고 어루만지는 것이었습니다. 부부는 아들을 붙잡고 야단쳤지만 철없는 아이가 어찌 부모 마음을 알겠습니까. 그만두는 체하다가 다시 반복하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점점 기력을 잃어갔습니다.

“안 되겠소. 모든 원인은 우리가 가난한 탓이나 저 아이로 해서 노모가 굶어 돌아가게 할 수는 없소. 저 아이를 버립시다.”

남편의 말에 아내는 흐느껴 울다가 결국 동의했습니다. 부부는 아이를 데리고 뒷동산에 올라가서 괭이로 구덩이를 팠습니다. 가슴 아프지만, 아이를 파묻어버리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덜거덕 하면서 뭔가 괭이에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돌로 만든 종이었습니다.

“자식을 죽이지 말라는 부처님의 계시로 알고 세 사람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가 돌종을 두드리니 웅장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소리는 경주 일대를 울리고 임금이 계신 대궐에까지 울려 퍼졌습니다. 임금은 신하를 시켜 종소리가 난 곳을 찾아가게 했습니다. ”

손순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신하는 돌종과 함께 임금 앞으로 갔습니다. 가난한 살림으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안 임금은 토지와 곡식을 하사해서 부족함 없이 살았다고 합니다.

“어떤 동네에 효자 효부가 있었습니다. 홀어머니를 정성으로 봉양했는데 오랜 병환으로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갖은 약을 다 구해 처방했지만, 병은 점점 심해 질 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스님이 탁발을 왔습니다. 효부가 콩을 듬뿍 담아 시주를 하는데 스님이 얼굴에 수심이 많은 이유를 묻자 어머님의 병환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용한 약이 있는데 처방대로 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무슨 약이냐고 매달리니 말합니다.

“어린아이를 삶아서 그 물을 먹이면 낫습니다.”

하고는 사라졌습니다. 너무나 끔찍한 일이지만 부부는 의논했습니다. 그렇다고 떠돌이 거지 아이를 잡아 죽일 수도 없습니다. 아이야 또 낳으면 되지만 어머니는 한 분이니 아들을 삶자구요. 이렇게 단단하게 마음을 먹고 솥에 물을 끓였습니다. 이때 서당에 갔던 아들이 돌아왔습니다.부부는 눈물을 흘리며 아이를 붙잡아 솥에 넣었습니다. 비명에 귀를 막고 눈을 가렸습니다. 한참 끓이고 있는데 솥에 넣었던 아들이 불쑥 나타났습니다. 부부는 기겁했습니다.

“애들하고 노느라 조금 늦었어요. 이 구수한 냄새가 뭐예요?”

아들의 말에 얼른 솥을 열어보니 사람이 아니라 커다란 산삼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제야 부부는 탁발한 스님이 산신임을 알았습니다. 효성 깊은 부부에게 하늘이 산삼을 내려준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이 산삼물을 한 그릇 먹고 벌떡 일어났고 세 번 먹자 완전히 나았습니다. 나머지는 부부와 아들이 모두 먹고 건강하게 오래 살았다고 합니다. 내가 아들을 솥에 넣는 장면을 연기하자 끔찍했는지 벌벌 떨던 손님들도 박수치며 환호했습니다.

“재담꾼이시여, 내 간이 콩알만 해졌소이다.”
잔칫상을 받은 주인이 허허 웃으며 말했습니다.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