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형
안동대학교
(철학)명예교수

필자의 젊은 시절 큰 스님 한 분의 말씀이 유행한 적이 있다‘. 물은 물이로되 물이 아니로다!’ 워낙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던 분이라, 대학생들마저도 금과 옥조처럼 사용하였다. 문제는 논리학 수업에서 터졌다‘. 모든 것은 그 자체와 동일하다.’‘ 1은 1이다. 따라서 1은 1아닌 것이 아니다.’라는 비약 없는 논리 법칙을 익혀야 하는데, 학생들이 이 스님의 말씀을 들먹이면서 형식논리학을 무시하는 것이었다. 물론, 스님 말씀은 고차원적 정신세계의 표현이고, 같은 소리를 서양의 고대철학자인 헤라클레이토스도 했었다. 조금 전 만난 물은 흘러갔고 지금 만나는 물은 흘러간 물과는 다르니까. 이런 설명이 생략된 추리를 비약이라고 한다. 그런데 비약은 때때로 우리 삶 전부를 모순으로 바꾸고, 심지어 그것을 부수기도 한다.

신학대학의 구약학교수인 친구가 있었다. 20여 년 전 그는‘ 천국에 가면 교회도 성경도 필요 없다. 성경과 교회는 그것이 필요 없는 천국에 가는 수단이다.’고 가르쳤다가 면직을 당했다. 이 소식을 들었을 때 기가 막혔다. 정말로 맞는 말이고 생각해 보면 진리인데! 평소 그를 싫어한 몇 몇 교수가 비약적 언술을 문제 삼아 그를 이단으로 몰았던 것이다. 진리도 정치바람을 타면 왜곡되고 퇴출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비약적 발언은 주의가 필요하다.

비약을 극단화시켜 보자. 오늘날 모든 교육기관이 표방하는 목표는 진리와 정의와 아름다움을 아는 지성을 함양하는 것이다. 만일 모든 교육자가 학습자에게 지성을 완벽하게 함양시킨다면, 교육기관의 존재 목적은 달성되는 것이고, 따라서 교육기관은 더 이상 필요하지도, 있을 이유도 없게 된다. 이렇게 될 때 세상의 모든 교육자와 교육기관은 일거에 없어져야 하는 신세가 된다. 따라서 천국에는 신학도 성경도 필요가 없는 것은 물론이다.

형무소는 잘못한 범죄자가 죄 값으로 징역을 살거나, 인간 자체를 혐오하게 만든 중죄인을 사형 전에 가두는 유치장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교육을 통해 죄인의 형질이 바뀔 수 있다고 판단한 현대범죄학은 형무소를 교도소로 개명하였다. 교도소 근무자를 교도관이라고 하고 수인들을 재소자라고 부른다. 교도가 제대로 이뤄지면 모든 재소자는 바야흐로 재택자가 될 것이다. 이 날은 모든 교도소를 리모델링해서 직업훈련소로 바꾸는 날이 될 것이다. 즉 형무소의 소멸일이 되는 것이다.

경찰도 마찬가지이다. 경찰관이 존재하는 이유는 경찰이 좇는 범법자가 있고, 이 범죄자의 범행을 예방하거나 막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행동을 좀 더 빠르게 그리고 안전하게 실천하는 경찰관은 존경을 받고 또 칭찬하여 높은 자리로 승진시킨다. 고위직 경찰관은 어쨌든 이런 일을 솔선수범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만일 모든 경찰관들이 다 이런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그들의 역할이 완벽하다면, 세상에서 범죄는 없어질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되면 경찰은 사라져야 한다. 그들의 필요가 더 이상 없을 테니까. 군대는 어떤가. 만일 적군이 완벽하게 퇴치되어 사라졌을 때, 더 이상 이웃 나라와 적대관계가 청산되었다면, 구약성경의 이사야서에 나오는 것처럼‘, 칼을 쳐서 낫을 만들고, 창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더 이상 전쟁을 연습하지 않는’ 평화의 시대가 올 것이다. 나아가, 모든 회사나 조직도 사정이 이러할진대, 이런 측면에서 보면 그 모두는 궁극적으로 자살단체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진짜 역설로 짜여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는가?

그런데 실제로 역사상 이런 역설이 실현된 사례가 있었던가? 단언컨대, 교육자, 공무원, 기업인, 군인, 정치가, 생산자들의 활동이 완벽하게 달성되어 폐지된 적은 단 한 번 도 없었다. 따라서 사고의 유치한 비약은 일상을 병들게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나의 학생들처럼 때때로 단편적 지식을 마치 완벽한 지식인양 비약시켜, 그것도 자신의 삶을 그렇게 사는 것처럼 혼동하며 행동한다.

이런 일탈된 비약은 오작동되는 경우 비극을 맞는다. 안타깝게도 최근 거물급 사회지도자의 죽음은 이것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그러므로 극단적 이념성향의 삶은 한계를 갖는다. 중간목표를 가진 꼼꼼한 일상을 상식적으로 살아야 한다. 큰 스님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형식논리학에 충실하자. ‘물은 물이다. 물 아닌 것은 물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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