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찬 소설가

내가 그냥 재담으로만 했다면 재미없을 이야기를 손짓 발짓에 성대모사까지 하자 손님들은 무척 좋아했습니다. 선조 시대에도 이런 점이 다른 재담꾼들과 차별화되었지만, 이 시대에도 먹힐 줄은 몰랐습니다. 이제 웃음으로 주목을 받았으니 칠순 잔치에 맞는 재담을 할 때입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홀아버지를 모시고 살던 부부가 있었습니다. 며느리는 시아버지와 성격이 맞지 않아 구박이 대단했고 시아버지도 동네 사람들을 붙잡고 며느리 흉을 보았습니다.”

이 말에 갑자기 손님들 표정이 굳어졌습니다. 칠순 잔치를 맞은 분 앞에서 할 말이 아니죠.

“아들이 더 참지 못해 궁리했습니다. 어느 날 아내를 불러서 말했습니다. 여보, 오늘.”

그다음 말은 무엇일까요? 불효하니 집을 나가라고 할까요. 모두 궁금한 표정입니다.

“시장에 갔는데 별 희한한 일을 보았소. 어떤 여자가 살이 허옇게 퉁퉁 오른 영감을 내다 파는데 돈을 엄청나게 받는 거야. 요즘은 시장에서 사람도 팔고 사나 봐.”

말도 안 되는 것이었지만 시아버지를 미워하는 아내는 귀가 솔깃합니다.

“그러니까 아버지도 잘 먹여서 내다 팔면 돈을 많이 받을 수 있을 거야.”

제 말이 지나쳤나 봅니다. 손님들의 눈이 일제히 칠순 잔치 주인공에게 쏠립니다.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습니다. 아내가 남편 말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날부터 시아버지 식사에 정성을 다했습니다. 잘 먹여서 피둥피둥 살이 쪄야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혹시 시아버지가 입맛에 맞지 않을까, 살이 빠지면 어떡해야 하나 시아버지를 팔면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그 돈으로 무얼 할까 생각할수록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시아버지는 구박하던 며느리가 하루아침에 바뀌자 무슨 속셈으로 저러나 하고 의심했지만 한 달, 두 달이 지나도 변함없이 맛있고 영양가 높은 음식을 바치자 시아버지는 며느리에 대한 섭섭함을 풀고 동네 구석구석 다니며 자랑을 했습니다.”

며느리 흉을 보던 시아버지가 이렇게 변하자 동네 사람들의 평도 바뀌었습니다.

“이보게, 자네 시아버지가 침이 마르게 자네 칭찬을 하니 그 비결이 뭔가?”

나는 빨래터에서 모인 아줌마들 흉내를 내며 연기를 했습니다.

“동네 어른들이 자기를 칭찬하니 며느리는 그동안 시아버지에게 못된 일을 한 것을 부끄럽게 여겨 진정으로 효도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이제는 시아버지는 며느리 없으면 못살고 며느리도 시아버지 안 계시면 못 살 정도로 가까워지고 정이 들었습니다. 아들은 둘 사이를 지켜보다가 하루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새끼를 꼬기 시작했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묻습니다.

“아니, 새벽에 웬 새끼를 꼬시오?”

“허어, 이 사람 잊었소? 오늘이 장날이 아니오. 아버님도 내다 팔기에 적당하게 살이 찌셨으니 내다 팔아야지.”

그 말에 아내가 펄쩍 뛰었습니다. 그리고는 울면서 어찌 아버님을 파냐고 하면서 남편을 원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야 아들은 자신의 계획이 성공한 것을 알고 새끼 꼬는 것을 중단했습니다. 중간 부분에 며느리의 태도가 바뀐 것을 듣고 안도하던 손님들은 아내가 울면서 내다 파는 것을 막았다고 하자 휴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나의 재담에 귀담아듣던 주인도 흐뭇한 표정이 되었습니다. 남과 남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어울려 산다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리고 먼 훗날에도 어려운 일입니다. 다음 재담까지 시간을 두고 저는 손님들과 함께 저녁밥 먹기에 바빴습니다. 그런데 어떤 떠꺼머리총각이 다가와 살며시 묻습니다.

“저, 어르신. 아까 재담 중에 라이벌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벌 종류입니까?”

참 귀도 밝습니다. 나는 라이벌은 남쪽 바다 건너에 있는 벌이라고 둘러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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