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형
안동대학교 명예교수

지금부터 50년 전, 고등학교 1학년생이던 나는 무예인 문을 두드렸다. 신체적 열악을 극복하려고 발을 들인 도장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때마침 이소룡의 영화 바람도 한몫했었다. <정무문>, <맹룡과강>, <용쟁호투>, <당산대형>은 몇 번씩이나 보면서 그의 무술동작을 감상했는데, 합기도를 익히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최근에도 Netflix를 통해 그의 무도를 다시 보면서 당시를 감동적으로 회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겨우 너 댓 편의 영화 출연으로 최고의 명성을 누린 이소룡은 과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무도인이었다. 그의 요절이 새삼 아쉬웠다.

50년 전 한국은 동네마다 껄렁한 사람들이 설쳤고, 골목골목에 시비를 거는 불량배들이 널려있을 정도로 사회가 허술했다. 반면에 경찰단속은 손이 딸려 웬만한 폭력은 주목도 받지 못하
였다. 이런 불안전을 막는다는 구실로 동네마다 태권도장, 합기도장, 권투도장, 유도장 등이 난립해 있었다. 나도 왜소한 체격이어서 호신술을 익히려고 합기도장에 등록을 하였다. 한 마디로 싸움기술을 좀 배우겠다고 합기도 수련생이 된 것이다.

합기도장에서는 통상 바로 윗선임에게 매일 한두 가지 손발기술을 배우고, 무도동작의 자세를 장별로 익혀 나갔다. 마지막으로 다 같이 모여 구령에 맞춰 동작을 맞춘 다음 겨루기(대련)를 하고 국민의례로 일정을 끝 내면서 찬물샤워로 마무리했다. 도복을 체육관 걸이에 걸어두고 귀가를 했다. 처음에는 하루하루가 지옥이라 느껴질 정도로 힘들었지만, 서너 달을 지나면서 사범의 지시로 심사를 받아 청색, 홍색, 흑색의 띠로 갈아매면서 품계를 높여나갔다. 4달, 6달, 1년을 지나면서 도복 띠의 색깔이 바뀌고, 그에 따른 자신감과 의무감을 채워갔다. 검은 띠의 품계를 받으면 묵직한 책임감이 따라오며, 싸우는 기술을 배우겠다고 시작한 합기도가 호신술을 넘어 인생수련의 전범으로 느껴졌다.

당시 사범과 관장으로부터 배운 무도의 정수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합기도는 품계를 올라가면서 수련이 기(기술) --> 예(예술) --> 도(사상)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싸우는 기술을 익히기에 혈안이 된다. 6개월 정도를 지나면 체형이 바뀐 것을 느껴 자기 기술을 써 보려고 만만한 아무에게나 시비를 건다. 한두 번의 승리로 꽤나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시기이다. 그러나 수련을 더해감에 따라 기술이 예술로, 그리고 신중한 가치관으로 바뀌는 체험을 경험하게 된다. 합기도는 손발을 쓰는 태권도, 낙법과 업어치기를 비롯한 힘을기르는 유도, 칼과 봉 그리고 쌍절곤 등을 쓰는 십팔기를 포함하고 있어서 몸을 고루 발달시키는 매우 중후한 무
술이다.

당시 겨루기에서 강조한 점은 시선·거리·호흡·속도였다. 하수들은 시선을 상대방의 발과 손 혹은 무기 자체에 고정시킨다. 겁에 질린 나머지 공격의 끄트머리에서 눈을 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손발은 우리의 눈을 묶어두는 고수의 계략에서는 다른 부위가 공격무기여서 무차별 공격을 가능케 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혹독한 수련을 통과하면 시선은 어느 사이에 손발에서 몸통 전체로 옮겨오고, 마지막에는 상대방의 눈에 다다른다. 1년정도 경과하면 수련생의 시선은 자연히 상대방 눈에 도달해 있다. 다음으로 중간급 겨루기 수련자들은 상대방의 눈에서 모든 것을 읽어낸다. 몸 구석구석에서 돌출하는 이들의 동작은 모든 신체를 사용하여 날렵하고도 아름다운 무용처럼 이어진다. 4~5년 정도 수련한 무도인들은 흡사 투쟁하는 야생동물의 모습을 연출한다. 글자 그대로 예술이 된다.

마지막으로 사범급 무도인들의 동작은 신중하였다. 그러나 상대방이 빈틈을 보이면 단번에 전광석화처럼 격파하는 필살기로 마무리하는 신비를 실천하였다. 이들은 또한 절제된 동작으로 자기 고유의 무예를 완성시키는 무도(사상)를 선보였다. 때로는 직접적인 겨루기 없이도 상대방에게 항복을 받아내는 숭고한 무도를 실현하기도 했다. 마음으로 무도를 이루는 숭고함이여!

이런 경험을 회상하면서 오늘날 우리나라의 정치를 비춰 보았다. 큰 흐름에서 핵심을 놓치고 잔손질로 허둥대는 하수 경제정책과 자기정당화에 급급하여 금도를 지키지 못하는 정부의 수반과 관료들의 유치함이 떠올랐다. 이제라도 정치인들이 무도현장을 방문하여 기·예·도의 단계별 특징이라도 알아보면 어떨까. 투쟁이 아니라 투쟁의 회피가 무도의 목적임을 깨달을 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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