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박

조수일

 

까맣게 덮어오는 검은 장막,
후드득, 긋고 지난 자리마다
깜깜히 뚫린 동공이었네
그대 마른 가슴팍,
한 줄 나를 새기고픈 열망은
수직의 몸 던짐도 무섭지 않은 질주였네
그리움도 쇠하여지면
각진 모서리가 된다는 것을,
그대, 검은 아가리의 포식자라고 나를 눈 흘기지 말아요
발톱 숨긴 그림자라고 닫아걸지 말아요
먼 산 보듯
싸늘한 눈길에 기댄다는 건
매일매일 침 삼켜지지 않는 통증이었다고,
광활한 당신을 비집고
빼곡히 들어찬 당신이 되고 싶었다고,
호박 넝쿨 덩실거리는 논둑에 걸터앉아
새끼손가락 걸던 기억을 들춰 보아요
잘 우러난 초록 빗소리 들리지 않나요
당신 가슴을 지나는
너울너울 춤추는 슬픈 무희의 흰 발꿈치 터닝 자국,
지금 돋을새김 중인가요?
들녘 가득,

<프로필>

조수일 : 전남 나주, 열린 시학 등단, 송수권 문학상 외 다수 수상

시감상

큰 물방울이 허공에서 찬 기운을 만나 갑자기 백색 덩어리가 되어 떨어지는 우박. 가끔 농작물 등에 피해를 입히기도 하지만, 우박 떨어지는 소리가 그리울 때도 있다. 잊고 살던 기억의 어느 부분을 채록해 놓아두었던 것들이 심장을 두들기는 소리 같은, 본문 중 그리움도 쇠하면 각진 모서리가 된다는 것이라는 말이 아슴한 먼 기억을 돋을새김 하게 만든다. 단어조차 희미한 심중 어느 곳에 숨어 있는 어떤 그림자를 향한 아우성 같은...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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