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품앗이로 공동체 거듭난 월곶 군하리 빌라 단지

자연 속에서 행복한 아이들 웃음소리 넘쳐

월곶면 군하리, 월곶 초등학교 건너편 작은 빌라 마당은 청명한 여름 햇살만큼 짱짱한 아이들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드륵드륵 씽씽이 미는 소리도 힘차게 들린다. 아이들이 없어 폐교되는 학교가 많은 김포 북부권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이다. 빌라 두 동 16가구에 아이들만 20여명이다.

▲ 아이들 얼굴에서 행복이 그대로 묻어난다. 홍 작가는 인성만큼은 우리 아이들이 최고라고 자부했다.

3살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다양한 연령의 아이들이 한데 어울리며 한 가족처럼 지내는 이곳은 그림을 그리는 홍지우(37) 작가를 중심으로 공동육아가 이루어지고 있다. 2018년 8, 9월에 입주하며 아이들 문제로 의논할 일이 많아지자 자연스레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됐다.

이건 이렇게 하자는 룰이 있는 것도, 공동육아를 하자는 등의 논의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학부모 엄마들끼리 단톡방을 만들며 의견을 나누고 어려운 일들을 해결해 나가다보니 어느새 단지 아이들을 함께 돌보고 있었다.

“미용실 하는 1층 언니가 아이들 머리를 잘라 주고, 그럼 그게 고마워서 집에 초대해 밥 한 끼 같이 먹고, 저는 아이들 미술 수업을 해주고 누구는 피아노를 가르쳐 주고... 그렇게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서로 해주다 보니 엄마들이 같이 아이들을 키우고 있더라고요.”

홍지우 작가는 세 살배기 아들 이솔이가 뱃속에 있을 때 이곳에 들어왔다. 가끔씩 남편과 조각공원에 데이트삼아 왔다 이 동네를 알게 됐고, 평화로운 자연환경이 맘에 들어 이사를 결심했다. 태어날 아이가 시골의 서정적인 모습을 보고 느끼며 자랄 수 있게 하고픈 마음도 컸다. 사실 신혼 첫 집은 아파트였다. 그곳에선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몰랐고, ‘만삭인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날 도와줄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은 두려움도 있었다.

▲ 1층 테이블에서 그림 그리기 시간을 갖고 있다.

서로 필요할 때 손 내밀어 주는 육아 품앗이로 공동체 형성

그런 면에서 이곳은 완전 다른 세상이다. 급하게 손을 내밀면 ‘기꺼이 잡아주는 손’이 많다. 홍 작가의 직업 특성상 휴일에 일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단톡방에 아이 좀 봐달라고 올리면 시간 나는 누군가 답하고 돌봐준다. 직장인 일산에서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쫓겨 안달하며 귀가하지 않아도 된다. 특별히 말하지 않아도 이솔이가 어린이집 버스에서 내리면 가까이 있던 누군가 데려가 돌보고 밥도 먹인다.

▲ 본지와 인터뷰 중인 홍지우 작가. 공동육아 일상을 ‘군하리댁’이라는 아이디로 SNS에 올려 지인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홍 작가도 마찬가지다. 옆집 나현이 엄마가 저녁에 공부하러 가는 요일이면 아이들 밥 차려주기 힘들겠구나, 싶은 마음에 아이들 불러 저녁밥을 챙겨준다. 서로 고마워하지만 미안해하지는 않는다. 필요할 때 서로서로 도움을 주니까. 한번은 이솔이가 새벽에 열이 났다. 가까이 병원이 없어 응급실을 갈 수도 없는데다 마침 해열제가 똑 떨어진 난감한 상황이라 단톡방에 조심스럽게 해열제 구하는 톡을 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와서 해열제 가져가’라는 응답이 울렸다. 새벽 4시였다. 일반적으로 불가능할 거라 생각하는 일들이 이곳에서는 그냥 일상이다.

“여기 이렇게 어울려 살면서 ‘사는 이치’를 깨닫는 것 같아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아가며 철이 든다고 할까요. 뭐든 나누는 게 하나도 아깝지 않아요. 어제도 감자 10kg을 샀는데 아는 분이라 너무 많이 주신 거예요. 집에 오자마자 감자 가져가라고 단톡방에 올렸죠. 그러면 오면서 호박 하나 들고 오고, 아이스크림도 갖고 오고... 식재료를 따로 살 일이 없어요. 이솔이는 장난감, 신발, 옷 뭐 하나 새로 산 게 없어요. 그냥 다 물려받았어요.”

▲ 단지 아이들이 모여 이솔이의 두 돌 생일을 축하해줬다.

단지 내 사랑방은 1층 공동텃밭 옆에 있는 그네의자와 테이블이 놓인 공간이다. 1층 미용실 언니네가 전원주택에서 살 때 쓰던 걸 가져다 놓았다. 이곳 그네의자에 앉아 있으면 아이들과 엄마들이 하나둘씩 음식을 들고 테이블로 모이기 시작하고, 그러다 부침개도 부쳐 먹고 바비큐파티도 하게 된다. 물론 단지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하지는 못한다. 그게 좀 아쉽지만 연령 많은 어르신, 마음을 열지 않는 수줍은 이웃을 살피며 활동하는 게 최선이라 생각하고 있다.

살아가는 이치를 깨닫고, 내가 손해봐도 괜찮다는 마음 갖게 해

이렇게 되기까지는 먼저 사람들에게 나가가는 용기를 낸 홍 작가와 남편의 노력이 컸다. 사진작가인 남편이 아이들 사진을 찍기도 하고, 배워둔 사주풀이를 이용해 학부모상담을 해줬다. 미술심리 자격증이 있는 홍 작가는 아이들 상담을 해주고. 아이들을 불러 영화를 같이 보고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군하리바’를 만들어 학부모를 초대하기도 했다. 이렇게 다가가니 서로 마음을 열고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두레 육아가 이루어졌다.

역설적이게도 코로나 때문에 더 친해졌다. 하루종일 집에서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되니 자연스레 더 함께하게 됐다. 무엇이든 혼자 하기는 힘들어도 같이 하면 어렵지 않은 법. 하루는 이집에서 다음날은 다른 집에 모여 식사와 활동을 하며 더욱 끈끈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논두렁 사이로 산책을 하고 씽씽이를 타며 자연 속에서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중1과 초2 딸을 둔 워킹맘 나현이 엄마는 출근거리 짧고 학생수가 적은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에 이곳에 왔다. 그런데 이전 학교에서 조용한 아이였던 큰딸 나현이가 밝고 활발한 성격으로 변하며 리더십과 자존감이 높아졌다. 나현이 엄마는 중1 학급이 9명밖에 안 되는 작은 학교라서 선생님들이 세세하게 아이들에게 관심을 줄 수 있는 덕분이기도 했지만 나현이 스스로 이곳이 “자연과 이웃과 친하게 지내고, 학교와 마을에서 소외되지 않고 모두 잘 지낼 수 있어 좋다”고 하는 만큼 단지 안에서 동생들과 어울려 생활하면서 잘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아파트에 살 때는 왠지 내가 손해 보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지배적이었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내가 손해 좀 보면 어때, 힘들고 불편하면 좀 어때’, 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서로 나누고 소통하다 보니 어울려 사는 재미에 쏙 빠진 것 같아요. 무엇보다 아이들이 행복해 하니 더 바랄 것이 없어요.”

▲ 부침개 파티! 함께 먹고 즐거움을 나누는 시간들이 모여 지금에 이르렀다.

‘엄마’라는 공감대는 자연 동네에도 관심을 갖게 했다. 민원을 통해 초등학교 앞에 신호등과 방범 카메라를 설치하게 했고, 빌라 앞 도로가 속도 내는 차들로 사고 위험이 높자 주민센터에 방지턱 설치를 요구, 8월에 설치될 예정이다. 공동육아 학부모들 스스로 동네 방범대원이 되고 있는 것. 분리수거도 철저히 하고 동네를 보다 더 좋게 할 수 있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러면서 홍 작가는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마을 전체가 다 같이 행복하게 사는 마을 공동체를 이루고 싶어요. 근데 집들이 띄엄띄엄 있는 곳이다 보니 쉽지가 않아요. 아침마다 산책 가는 예쁜 길도 둘레길로 만들고 싶고, 단지 안 주차장에서만 노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 공원도 만들고 싶어요. 단지 안에 정자라도 하나 지어서 시골 정자처럼 모여 수박 먹고 숙제하고 그러면 좋겠어요. 하지만 일이 되면 흥미를 잃게 될까 걱정되기도 해요. 이런 부분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해요”

홍 작가는 우선 마을사업 공모부터 도전해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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