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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혹부리영감의 김포이야기> 방귀 이야기
최영찬 소설가

토정 선생이 눌재 영감의 말더듬을 치료하기 위해 서두를 때 저는 이 동네 지주의 칠순 잔치에 재담꾼으로 불려갔습니다. 잔칫상을 보니 내가 살던 때와 달리 풍족하고 화려했습니다. 이때가 선조 때보다 훨씬 잘 살았던 것입니다.

“우선 주인어르신의 칠순을 경하 드립니다. 제가 기회가 된다면 어르신의 상수연에 또 초빙되어 재담을 늘어놓았으면 합니다.”

상수연(上壽宴)은 백 살 때 하는 잔치를 말합니다. 칠순 상을 받은 주인은 제 말에 기분이 한층 업 되어서 싱글벙글합니다. 재담비를 따블로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어떤 집에 혼례가 있었습니다. 신랑이 신부 집에 가서 혼례를 치른 다음에 시가로 와서 시부모님과 일가친척이 모인 가운데 절을 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긴장해서 그런지 방귀를 뽕하고 뀌었습니다.”

신부가 절하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친척들이 여기저기서 킥킥대었습니다. 얼굴이 새빨개진 신부를 보고 시아버님이 점잖게 말합니다.

“아이고, 경사로세. 시부모 상견례에 신부가 방귀 뀌면 아들을 난다고 하니 좋은 일 아닌가.”

그 말에 신부는 좋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서 웃음을 참다가 방귀를 또 연달아 뽕뽕뽕 세 번을 뀌었습니다. 그러자 시아버지가 당황하며 소리쳤습니다.

“됐다. 손자가 너무 많다. 그만하면 된다.”

저의 재담이 재미있는지 손님들이 손뼉을 치며 웃었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방귀로 유명한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어떤 동네에 방귀를 수시로 뀌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논에서 일할 때도 뿡, 밥 먹다가도 뽕, 심지어 잠자리할 때도 뽕하고 방귀를 뀌어 좋은 분위기를 깨는 것이었습니다. 뽕~”

내가 방귀를 성대모사하자 재미있는지 손님들이 손뼉 치며 웃었습니다. 방귀를 자주 뀌다보니 음의 높이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톱으로 연주하는 목수가 있듯이 방귀로 다른 걸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방귀를 뀌는 게 아니라 연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뿡뿡뿡. 제가 방귀 소리를 흉내 내며 민요를 연주하자 모두 뒤집어집니다. 하하 호호.

“이렇게 해서 방귀로 연주하자 사람들은 그때부터 방귀를 가죽피리라고 불렀습니다. 이런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라도와 경상도에 유명한 방귀쟁이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방귀를 뀌면 집이 무너질 정도로 셌습니다. 서로 만난 적도 없지만, 사람들은 경상도 방귀쟁이가 더 세다, 아니다 전라도 방귀쟁이가 세다하며 자기들끼리 입씨름을 벌였습니다. 그러자 두 사람은 라이벌, 아니…… 경쟁의식이 생겼습니다.”

하마터면 미래를 내다본다는 것을 들킬 뻔했습니다. 뜬금없이 라이벌이라니.

“경상도 방귀쟁이가 누가 더 센가 내기를 하겠다고 전라도로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어디 나갔는지 집에 아무도 없자 초가집에 대고 방귀를 뿡하고 뀌자 초가집이 멀리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저녁 늦게 온 전라도 방귀쟁이가 와 뵈니 집이 없어진 것이 아닙니까? 이건 분명히 경상도 방귀쟁이 짓이다! 라고 생각하고 커다란 절구통을 가져다 놓고 방귀를 뿡하고 뀌었습니다. 그러자 공중으로 날아간 절구통이 경상도 방귀쟁이 집에 떨어졌습니다.”

경상도 방귀쟁이가 집에 돌아와 보니 절구통이 지붕에 떨어져 왕창 부서져 있는 것이 아닙니까. 전라도 방귀쟁이가 복수한 것으로 짐작한 그는 절구통을 전라도 쪽에 놓고 방귀를 뿡하고 뀌었습니다. 집터에 새집을 짓던 전라도 방귀쟁이가 날아오는 절구통을 보고 얼른 궁댕이를 돌려 방귀를 뿡하고 뀌자 다시 경상도로 날아갔습니다. 경상도 방귀쟁이는 다시 절구통이 날아오자 뿡하고 뀌었습니다. 그러자 날아오던 절구통이 부르르 떨더니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김포신문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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