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학교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꼽으라면 점심시간을 꼽는다. 아이들과 점심을 같이 먹고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거나 산책을 하며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 아이들의 운동하는 모습이나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는 모습들을 담고 싶어서 중고로 꽤 비싼 카메라를 사기도 했다. 시홍이는 중 1때 우연히 나의 카메라에 담겼던 친구다. 시홍이가 나의 카메라에 담기게 된 사연은 이렇다.

화창한 봄날 카메라를 들고 벚꽃과 노란 산수유를 배경으로 우리 반 아이들의 단체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고 운동장을 돌아보는데, 멀리서 커다란 동그라미 두 개가 굴러오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1학년으로 보이는 두 녀석이 작은 공을 쫓아 뛰어 오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이름도 모르는 친구들이지만 카메라에 담았다. 생각보다 표정이 예쁘게 나와 1학년 담임 선생님들께 사진을 보냈더니 한 선생님께서 당신 반 아이라며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셨다. 조용하고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아 걱정이었는데, 표정이 밝아서 좋다고 하셨다.

그랬던 녀석이 중3이 되어 우리 반에 배정된 것이다. 커다란 덩치에 머리는 짧게 깎고 눈이 작아, 웃지 않고 있으면 인상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외모였다. 1학년 때 사진 속에서 본 귀엽고 앳된 이미지는 간 곳이 없다. 학기 초라 개인별 상담을 시작했다. 시홍이와 상담을 하며 가정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물어보는데, 대부분의 질문에 모른다는 답변을 늘어놓았다. 그러더니 대뜸 “전학을 오는 게 아니었어요.” 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시홍이는 초등학생 때 강화에서 전학을 왔으며 아버지는 인근 지역에서 중국집 요리사로 일을 하고 계시고, 어머니도 취업으로 인해 멀리 나가 계시다고 했다. 누나와 함께 살고 있는데, 누나가 대학에 다니고 있어서 그나마 가까운 김포로 이사를 온 거라고 한다. 그 외에 시홍이는 더 이상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 상담을 마무리 지었다.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을 찾아 시홍이에 대해 물어봤지만, 선생님도 어머니에 대해선 잘 모르신다 했다.

4월이 시작되고 반 아이들과 가까운 근교로 도시락을 싸서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나들이의 꽃은 도시락이 아니던가. 혹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을까봐 김밥을 준비했다. 김밥은 나름 자신이 있었다. 김밥을 들고 아이들과 꽃놀이를 즐기기로 한 장소로 나섰다. 아이들을 만나 사진도 찍고, 축제현장을 즐겼다. 점심때가 되어 돗자리를 펴고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아이들이 나의 도시락을 보며 놀라워하는 반응을 기대하며 도시락을 열었다. 아이들의 감탄사가 퍼진다.

“와우, 맛나겠다. 정말 맛있어 보인다!”, “정말 이거 장난이 아닌 걸!”

나의 김밥이 아이들에게 이정도 평가를 받으리라 생각도 안 했는데, 아이들의 반응이 놀랍다. 그런데 그 반응은 내가 싸 온 김밥 때문이 아니라 시홍이가 싸온 도시락을 보고 보이는 반응들이다. 시홍이가 준비한 도시락에는 김밥, 유부초밥, 베이컨말이, 볶음밥, 샌드위치, 과일들이 도시락 칸칸이 담겨있다.

“시홍아, 이 도시락 네가 만든 거야?”

내가 먼저 물어보려 했는데, 다른 녀석도 궁금했는지 선수를 쳤다.

“응, 김밥빼고는 내가 다 만들었어.”

시홍이는 음식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갖고 있었다. 아버지가 요리사이기도 하지만 일찍부터 요리를 해서 잘 한다고 이야기 한다. 요리를 좋아하거나 요리사를 꿈꾸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만든 음식을 맛나게 먹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다고 했다. 시홍이는 도시락뿐만 아니라 매일 학교에 올 때마다 먹을거리를 가지고 왔다. 커다란 뻥튀기 과자를 가져오기도 하고, 사탕을 가져와서 나눠주기도 했다. 자신의 것을 나눌 줄 아는 따뜻한 아이였다.

그리고 점심시간마다 함께 산책을 하며 대화를 해 보니 시흥이는 학교 곳곳에 대해서 나보다 많이 알고 있는 아이였다.

“선생님, 학교에 앵두랑 보리수, 오디가 있는 거 알고 계셨어요?”

“앵두는 본 적 있는데 보리수랑 오디는 본 적이 없어. 매실이 있다는 얘기는 들은 적 있고.”

“선생님, 따라와 보세요. 제가 알려 드릴게요.”

시홍이를 따라 학교 주변을 돌아보니 정말로 많은 유실수들이 있었다. 시홍이 말로는 얼마 전까지는 오디가 아주 싱싱했었는데 지금은 거의 말라버렸다고 한다. 진짜 나무 주변에 말라비틀어진 오디들이 많이 있었다. 보리수는 이제 한창이었다. 내가 어릴 때 먹던 보리수는 열매가 매우 작았는데, 학교의 보리수는 그 열매가 제법 실하다. 몇 개를 따서 입에 넣었다. 살짝 달콤하고 새콤한 맛도 있지만 떫은 맛도 강했다.

“에구, 떫다.”

“선생님, 보리수는 술을 담그거나 효소로 만들어 먹으면 좋대요.”

“너 술이나 효소도 만들어?”

“네. 술을 만들어 놓으면 아빠가 오실 때 마다 한 잔씩 하시고, 효소는 누나랑 엄마가 좋아해요.”

“기특한 녀석일세. 술이랑 효소도 담글 줄 알고. 난 효소는 만들어 봤는데, 아직 술은 만들어 보질 못했어.”

“제가 기회가 되면 한 번 만들어 드릴게요.”

“말만 들어도 고맙다. 고마워.”

어느 날 아침 학교 책상 위에 놓인 담금주를 보고 깜짝 놀랐다. 편지도 없이 술병만 덩그러니 놓여 있어 한동안 고민을 했었다. 그러다 술병 뚜껑에 그려진 산딸기 그림을 보고서야 얼마 전 시홍이와 주고받은 대화가 떠올랐다. 시홍이가 그린 산딸기는 삐뚤빼뚤 하지만 제법 산딸기를 닮았다. 술병을 들어보니 밑에 작은 쪽지가 있다.

 

[선생님! 이거 어제 제가 담근 거예요. 원래는 한참 있다가 열매를 걸러내고 드리려다 그냥 지금 드려요. 6개월 정도 후에 열매는 걸러 버리고 드셔요. 시홍 올림]

 

많이 고마웠다. 주위 선생님들에게 난 이런 것도 받는 사람이라고 자랑도 많이 했다. 그리고 녀석에게 답장을 띄웠다.

“고맙다, 시홍아. 선생님이 잘 보관해 두었다가 시홍이 고등학교 졸업하고 성인되면 선생님이랑 같이 나눠 마시자꾸나. 고마워. 잘 보관해둘게.”

시홍이를 만나면서 내 주위의 것들을 조금 더 자세하게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 학교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학교에 있는 나무 하나 제대로 살피지 못했던 나를 보며, 학생들 하나하나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던 건 아닌지 반성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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