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차가 되고 싶다
강해림


더 이상의 질주도 전전긍긍도 타인의 피처럼 시큰둥해서
나를 나이게 했던 것들
툴툴거리며 편두통 앓던 나사못일랑
코르셋 훌훌 벗어버리듯 풀어버리고 싶을 때
어느 날 갑자기
폐경이 찾아와
어쩌겠나, 결코 폐업하고 싶지 않은 여자를
순순히 반납해야 할 때
오직 내 것이라 믿으며 탐했던
검은 아스팔트와의 뜨거웠던 동침도 추억의 트렁크도 텅텅 거덜 나서
절정의 아득한 높이에서
추락하는 붉은 녹이고 싶을 때
바퀴에 낀 진흙 같은
욕망을 배설하듯 딱 한 번의 서스펜스,
미친 속도의 짜릿한 전율에
목숨 걸고 싶을 때

[프로필] 강해림 : 경북 대구, 한양대 국문과, 현대시 등단, 시집 <그냥 한번 불러보는> 외 다수


시 감상
늙은 어머니가, 아버지가, 남겨주신 말씀 하나가 기억난다. “살아 보니까 알겠더라”. 가끔 끄덕이다가 또 아주 가끔 뭘 아셨다는 말씀인지? 하다 나는 여적 살아있고 살아봤는데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폐경, 폐업, 딱 한 번의 서스펜스와 같은 질주, 목숨 걸고 싶은 일이 있을 때, 그때 나는 “살아보니까 알겠더라”고 말할 수 있을지? 살아보니까 정말 모르겠더라가 더 많은 폐차장의 폐차가 된 기분, 요즘이다.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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