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찬 소설가

양성지 영감도 십만 냥이라는 말에 놀라 입을 딱 벌리고 맙니다. 상인들이 엄청난 금액에 깎자고 했지만, 김선달은 하루에 얼마가 돈이 들어오는데 싸게 파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상인들이 머릿속에서 계산해 봐도 지금처럼 돈이 들어오면 일 년이면 본전이 회수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엄청난 금액이라 상인들은 십만 냥을 상인의 수에 따라 나눠 추렴했습니다. 이들은 대동강 물을 팔면 수익을 공평하게 나누기로 하고 십만 냥 어음을 가지고 대동강가로 갔습니다. 여전히 물을 물동이에 푼 사람들은 한 푼씩 돈을 냈습니다. 수북하게 쌓인 엽전을 보고 상인들은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삼 년이 지나면 그 뒤로 평생 돈이 쌓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열심히 돈을 받고 있는 김선달에게 가서 어음을 건네주었습니다.

“정말 대동강을 사겠다는 거요? 이럴 줄 알았으면 이십만 냥을 부를걸.”

하면서 마지못해 판다는 식으로 어음을 받고는 천막과 집기 일체를 넘겨주고 사라졌습니다.

다음 날. 상인들은 첫 장사를 위해 모두 나왔습니다. 그날도 많은 사람들이 물지게를 지거나 물동이를 이고 대동강으로 나왔습니다. 강물을 잔뜩 푸고 그냥 가자 상인들이 붙잡았습니다.

“여보슈, 여보슈. 돈을 내야지.”

“돈? 무슨 돈을 내라는 말이요?”

사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꾸하자 상인들은 어제 김선달에게 대동강을 샀다고 말했습니다.

“아니, 여보슈. 지금 농담하슈? 세상에 강물을 판다는 말은 처음 듣소.”

그의 말에 너도나도 처음 듣는 말이고 맞장구쳤습니다. 그제야 상인들은 사기를 당한 것을 알고 땅을 쳤습니다. 한편 어음을 가지고 간 김선달은 얼른 엽전으로 바꿔 협조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멀리 남쪽으로 도주했습니다. 상인들은 평안도 감영에 김선달을 고발했지만, 그의 행적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그, 그, 래, 래, 서. 기, 기, 김 서, 서, 선, 달.”

양성지 영감의 물음은 김선달이 어디로 갔느냐는 말씀이지요.

“김선달은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함경도로 간다고 하고 실제로 원산까지 갔습니다. 그리고는 몰래 배를 타고 경상도로 스며들어갔지요.”

경상도로 간 김선달은 당분간 조용히 살고자 했습니다. 십만 냥을 사기 당했으니 이악스런 상인들이나 포도청에서 가만 둘리가 없지요. 두어 달 살다가 자리를 옮기면서 추적을 피했습니다. 그때마다 여행하는 선비, 풍수가, 점쟁이 등으로 위장했는데 어느 마을에 며칠 묵게 되었습니다. 동네 사정을 알아보니 최고의 부자에게 아들 하나가 있는데 이게 모자란 위인이었습니다. 딸은 보기 드문 미모의 아가씨로 많은 남자가 얼굴이라도 한번 보기를 원했습니다. 김선달이 머무는 집의 이웃집에 사는 청년도 그런 남자 중의 하나였습니다. 아니, 두 남녀는 몰래 만나는 사이었습니다. 눈치 빠른 김선달이 두 남녀가 만나는 것을 보고는 엿들었습니다.

“향시에 합격하면 청혼을 받아주겠다고 아버님이 말씀하셨지만, 과거장에 응시하러 갈 비용도 마련하지 못하니 이제 만나는 것은 끝내는 것이 좋겠소.”

청년의 한탄에 아가씨는 그저 울뿐이었습니다. 아무리 청년이 똑똑해도 삼년에 한번 대구 감영에서 치는 향시에 갈 비용을 마련 못 할 정도면 부잣집에서 혼인을 허락할 리가 없습니다.

“흑흑 저는 도련님이 이곳을 떠나자고 하시면 저도 갈 것이에요.”

“그리할 수는 없소. 이제 단념하겠소.”

청년은 흐느껴 우는 아가씨를 뒤로하고 자기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김선달은 갑자기 마음이 아파졌습니다. 자신도 이런 쓰라림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흐느끼며 발길을 돌리는 아가씨를 뒤쫓아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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