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보살 마하살

 

반칠환

 

허름한 시골 함바 집 식탁 위

처억 이름 모를 냄비가 앉았다 간

검은 궁둥이 자국을 본다

손으로 쓸어보지만

검댕은 묻어나지 않는다

아무리 바쁘고 속이 타도

궁둥 걸음밖에 할 수 없었을

어떤 아낙의 모습 선연하다

눈물 나게 뜨거워 달아났다가도

가슴 시리면 다시 그 불판 그리워

엉덩이부터 들이댔을 서러운 조강지처

평생 끓이느니 제 속이요

쏟느니 제 창자였을

저 아낙의 팔자는 어느 사주에

적혀 있던 걸까

팔만사천 번 찌개를 끓였어도

죄다 남의 입에 떠 넣고

빈 입만 덩그라니 웃었으리라

 

 

프로필

반칠환 : 충북 청주, 중대 문창과, 동아일보 신춘 당선, 시집 <누나야> 외 다수

 

 

시 감상

깨달음을 구하여 중생을 교화하려는 사람을 보살이라고 한다. 본디 깨달음이란 팔만 사천 번 이상 자신을 담금질해도 얻을 수 없을 단련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광야의 단식과 보리수 밑의 대오각성의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냄비를 보라! 팔만 사천 번 제 속을 끓여 남의 입에 떠 놓고 덩그러니 빈속으로 웃는 냄비. 깨달음은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서 배울 수 있는 지극히 간단한 공부인데 왜 나는 못 보며 사는지? 참으로 궁금한 일이다.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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