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민간인학살 희생유골 묻힌 곳에 포크레인 공사

유족회 “과거사법 통과, 유족찾기 운동 및 위령사업 적극 나설 것”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과거사법)이 지난 20일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등 국가 인권유린 사건 진상 조사가 다시 가능해진 가운데, 김포지역 민간인학살 당시 희생자들의 유골이 묻힌 땅에 개발이 시행되고 있어 김포6.25전쟁 민간인희생자유족회(이하 유족회)가 “조속한 유골발굴 사업 시작”을 호소하고 나섰다.

평균 연령 70~80대에 이르는 유족회는 “우리 나이가 80을 넘었다. 이제는 더 이상 늦출 수가 없다”며 “여기 저기 땅들이 파헤쳐지고 있다. 개발 전에 억울하게 희생된 유골들을 거둬 관내에 위령탑을 세웠으면 하는 것이 마지막 바람일 뿐”이라고 토로했다.

현재 유족회는 과거사법이 다시 시행됨에 따라, 관내에서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유족 찾기 운동을 전개하고, 위령사업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유족회 민경철 회장은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을 가슴에만 묻고 사는 유족들이 관내에 많이 있는 것으로 안다. 유족회는 고인의 명예를 회복하고 유족의 트라우마를 해소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고 언급했다.

이에 본지에서는 당시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의 사연을 싣고 이와 비슷한 일을 겪었거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의 제보를 받고자 한다. <편집자주>

“억울한 우리 가족과 이웃의 유골 파헤쳐질까 걱정”

 

6.25전쟁 민간인학살 유족회 회원인 민천기 씨에게는 오래된 소원이 하나 있다.

하성면 태산패밀리파크 인근 맞은편 골짜기에 묻혀진 유골들을 가까운 곳에 위령탑으로 모시는 것이다. 그 소원은 최근 들어 더욱 조급해져가고 있다. 유골이 묻힌 주변에 공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민 씨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골짜기를 바라보며 “저는 올해 나이가 여든 넷입니다.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로 인해 우리 집안은 일곱 식구 중 두 식구만 살아 남았습니다. 억울하게 희생된 우리 가족과 우리 이웃들의 유골이 아직도 거둬지지 않았습니다. 하성면 골짜기 언저리에 수없이 뿌려진 유골과 넋이 언제라도 포크레인으로 파헤쳐질까 겁이 납니다. 유족들의 마지막 소원은 아마 저와 비슷할 겁니다. 나이가 많아서 멀리 위령탑으로 가지 못합니다. 관내 억울한 피해를 입은 분들의 혼령을 모아 위령탑을 세우고 그곳에서 넋을 위로할 수 있게 제발 시가 살펴봐주었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피 빨래 하던 그때, 그런 일 겪은 이가 나 뿐일까요”

 

민천기 씨의 기억 속에 어린시절에 보냈던 하성면은 언니와 동생이 함께 어우러져 언제라도 놀 수 있었던 즐거운 곳이었다. 민 씨가 어린 시절부터 배급소를 하시던 아버지가 모함으로 밀고되고,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자매가 죽임을 당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민 씨의 아버지는 일제시대때부터 해방 후까지 배급소를 운영하고 있었다고 한다. 배급소를 운영한다는 이유만으로 이해할 수 없게 밀고를 당한 아버지는 억울하게 잡히게 됐고, 이어 어머니, 자매들까지 모두 끌려가게 됐다고 한다.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그 날, 저에게 ‘물 좀 다오’라고 하셨던 말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때 어른들이 얼른 방으로 들어가라고 해서 아버지께 물 한 잔 드리지 못하고 손 한 번 잡아드리지 못했던 것이 평생의 한입니다. 그 날 이후 아버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그러고 누군가 오빠에게 누구 아들이냐고 묻더라고요. 그래 누구 아들이라고 말했더니 그대로 뒷산에 끌려갔어요”

민 씨가 말하는 당시의 정황은 참담하다.

“소 기르는 곳이었어요. 뼈와 신발이 범벅되어 있고 뼈가 엉켜있어서 아직도 저러고 있습니다. 피눈물이 흐르고 가슴이 막힙니다”

오늘날 민 씨는 교통회사를 운영하는 회장이다. 어린 시절 부모 없이 자라면서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오며 살아왔다는 민 씨. 공장생활하면서 피를 토하고 병원에서 살 수 없을 통보를 받을 정도로 아팠던 때도 있었지만, 악착같이 일어서서 오랜 시간을 묵묵히 지역사회에 선행하며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어렸을 때부터 공장생활을 오래 했어요. 아버지 억울한 죽음에 대해 혹여라도 헛소문이 들릴까 자식이 선행하고 산다는 말 들으려고 평생을 봉사하고 살았어요. 집집마다 피 빨래가 일상이던 그때, 이런 일 겪었던 이가 저 뿐일까요. 우리 후손들이 조상들 이런 일 겪은 것에 대해 이제 관심이나 가질까요. 우리 세대에서 해결하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 저렇게 포크레인이 올라가고 있는데 여전히 계신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 그 분들 영혼을 어떻게 달래 드릴 수 있을까요”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