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학기 초에 담임이 된 학급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상담을 한다. 혜진이와 마주한 것도 그때였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상담은 하교 후에 실시했다. 상담을 위해 미리 받아둔 가정환경 조사서를 봤다. 가족 란에는 아버지와 여동생이 둘 있었다. 母 란은 빈 칸, 그리고 가족 관계를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은 비어있었다. 원하는 상담 내용, 담임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 교우관계 등 모두 비어있었다. 혜진이 오기 전에 다른 상담 때와 마찬가지로 과자 몇 개를 테이블에 뒀다. 혜진이와는 조사서의 빈 공간부터 풀어나가겠다고 생각했다.

혜진이 교무실로 들어왔다. 혼자가 아니었다. 친구와 같이 들어왔다. 소영이었다. 소영은 다른 반 아이다.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말문을 연 건 혜진이 아니라 소영이었다.

“혜진이가 혼자 들어가기 겁난다고 해서요.”

담임과의 상담을 겁내는 아이라고?

“그래도 샘과의 첫 인사인데, 둘이 해야 하지 않을까?”

소영을 응시하며 말하지 소영이 혜진을 한 번 쳐다보고는 잠시 머뭇거리다 교무실 밖으로 나갔다. 소영이 나가자 갑자기 혜진의 눈에서 눈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웠다. 내심 무슨 사연이 있나 보다 생각하고 손수건을 혜진의 손에 쥐어주었다. 하지만 혜진은 쥐어 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생각이 꼬리를 무는 동안에도 혜진의 울음은 그치지질 않았다. 그렇다고 자리를 일어나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그 아이 앞에 앉아있는 것이 전부였다.

혜진의 울음이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그때까지 가지 않고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소영을 눈짓으로 불렀다.

“오늘 상담은 어려울 것 같으니 다음에 하자.”

마치 혼잣말 하듯이 혜진에게 말하고 소영에게 혜진을 데리고 가라고 했다.

다음 날, 소영을 불러 혜진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운 이유를 물었다. 소영이도 아직 나와 친해지지 않아서인지 어렵게 입을 열었다.

혜진과는 유치원 때부터 단짝이었단다. 봄에 유난히 힘들어 하는 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시기가 2월 말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혜진이 초등학교 6학년이 되기 전 2월에 오랜 암투병을 하시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래서 지금처럼 봄이 오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커져서인지 혜진이가 힘들어 한다고... 오랜 기간 동안 어머니의 병을 치료하다보니 가계는 기울었고, 몇 년 전부터 아버지는 술에 의존하고 사신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죽음, 갑자기 기운 가정, 아빠의 무능력한 생활과 알코올 중독. 여러 충격과 한꺼번에 받아 어느 순간부터 거의 말을 하지 않는 단계까지 왔다고. 그나마 자기와 있을 때는 웃기도 하고 대화도 한단다. 아래도 여동생이 둘 있지만 본인이 힘들다 보니 동생들을 돌보지 못하는 것 같다.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이 됐다. 소영에게 혜진의 고민을 같이 해결해 보자고 했다. 우선 혜진이와 같이 밥을 먹기로 했다. 감자탕을 먹었다. 소영이 혜진이가 감자탕을 좋아한다고 말해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며칠 후엔 치킨을 먹었다.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물론 소영이도 같이. 그렇게 몇 번의 만남이 있었지만 둘만의 대화는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방과 후에 혜진을 불렀다.

“혜진아, 만약 선생님이 너에게 소원을 들어 준다고 하면 어떤 소원을 말할 거야?”

별 대답을 기대하지 않고 물었다.

“피-아-노요.”

혜진은 작은 목소리로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뜻밖의 대답에 나의 머리는 하얗게 됐다. 그렇지만 쉽게 꺼낸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냥 넘기고 싶지 않았다.

처음에는 음악선생님께 부탁을 드려 학교 음악실에서 치게 하려고 했는데, 혜진이 싫다고 했다. 고민 끝에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는 몇 년 전 제자의 어머니에게 혜진의 상황을 말씀드리며 어렵게 부탁을 했다. 다행히 그 분은 흔쾌히 부탁을 들어 주셨다.

며칠 후 우리는 그 피아노 학원에 같이 갔고 혜진은 기뻐했다.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의 수고가 보람으로 바뀌었다. 혜진이가 피아노를 치는 걸 듣고 있자니 무척 맑고 밝은 느낌이었다. 혜진이 정말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음 날 만난 혜진은 먼저 말을 건네지는 않았지만 나에게 고마워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조금씩 나에게 마음을 연 것일까? 그 후로 혜진과 점차 웃으며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어려운 봄은 지나갔다. 다행히 혜진은 중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렇게 또 새학기가 시작되는 봄이 찾아왔다.혜진이가 이 봄을 힘들어했다는 기억을 떠올릴 즈음 혜진이가 찾아왔다. 반가움보다 걱정이 앞섰다. 아마도 힘든 무엇이 있어서 왔으리라.

마주 앉은 혜진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손목에 칼로 그은 자국들이 너무나 많이 있었다. 중학교 때도 가끔 칼자국이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칼자국은 아니었다. 얼마나 큰 아픔을 지우려 손목을 그었을까? 마음이 아팠다.

“선생님, 죄송해요. 너무 힘들어서 찾아 왔어요.”

그리고는 한참을 운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변화의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아이. 아마 변해주지 못하는 주변 환경이, 그리움이 새 봄에 다시 아픔으로 왔으리라 생각됐다. 1년 전 아무 말도 못하고 울기만 하던 아이가 희망의 끈이라 여기며 나를 찾아 온 것이다.

삶이 의미가 없고 더욱 무기력해져 가는 자신이 두렵다는 아이, 누구에게 마음을 툭 터놓고 이야기를 못하는 아이.

나는 삶의 무게로 힘들어하는 혜진에게 아르바이트를 해 보라고 했다. 일을 하면 뭔가 의욕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용돈도 스스로 벌게 하고 싶었다. 다행히 해 보겠다고 했다.

수소문 끝에 ‘○○○’ 아이스크림 가게에 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한달음에 아이와 아이스크림 가게로 갔다. 그 곳 점장은 아이가 아직 어려 보호자 동의가 꼭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나의 신분을 밝히고 우선 내가 신원 보증을 하겠다고 했다. 아이 부모님의 동의는 내가 천천히 받아주기로 하고 아르바이트를 시켜 달라고 부탁을 했다. 다행히 혜진이 그 곳에서 일을 하게 됐다.

얼마 후 가게에 가 보니 아이가 일을 하고 있었다. 열심히 일을 하는 모습이 힘들어 보였지만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언젠가 아이의 가슴에도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한 행복이 가득 담기길 바라본다. 그리고 다음에 날 찾아 올 때는 꼭 행복한 모습으로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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