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찬 소설가

의적 이야기가 나오자 보부상들의 호응이 좋은 이유를 알았습니다. 보부상들은 활빈당 의적 홍길동이 수호신이 되어 자신들을 지키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런 믿음 때문에 도둑이 들끓는 산길로 거침없이 다니고 도둑 역시 가급적이면 보부상은 건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두둑하게 재담비를 받고 집에 돌아오니 눌재 영감이 휴가를 맡아 댁으로 돌아왔고 토정 선생과 한참 동안 필담을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토정 선생이 저를 불렀습니다.

“풍문, 눌재가 말을 더듬는 이유를 알았다. 동굴에 들어갔을 때 괴물을 보고 놀란 것이 아니다. 구렁이가 강아지를 잡아먹은 것을 보고 놀란 것이야.”

양성지 영감의 더듬는 원인을 어떻게 알아낼까 고심하던 토정선생은 최후의 방법으로 최면술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눌재는 어린 시절 다 죽어가는 강아지를 구해 몰래 키우고 있었는데 동굴 근처에서 같이 놀다가 강아지가 안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뒤를 따라갔는데 구렁이가 주먹만 한 강아지를 꿀꺽 삼키고 스르르 사라지는 것에 놀라서 기가 막혔던 것입니다. 그때의 충격으로 뱀을 보면 경기를 일으키며 말을 더듬다가 그것이 굳어버린 것입니다.

“몇 십 년 더듬던 것을 금세 고칠 수는 없을 거야. 하지만 정성을 다하면 고칠 수 있다. 그것 때문에 이 세상으로 온 것이니. 눌재가 너의 재담을 듣고자 하니 같이 가자.”

이렇게 해서 양성지 영감과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조선 최고의 경세가가 눈앞에 있습니다.
“그, 그, 그래. 부, 불, 불편 하, 하, 하지는 않, 않, 소?”

다정한 어투로 말씀했지만 짧은 말을 아주 아주 길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네, 배려하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면 봉이 김선달 이야기를 처음으로 올리겠습니다.”

봉이 김선달은 조선 후기 때 사람이지 만 눌재가 알 리가 없으니 그냥 하는 것입니다. 평안도 사람 김선달은 이름이 아니라 무과급제해서 선달이라는 직함만 가지고 있는 김씨를 말합니다.

과거에 붙었어도 벼슬을 못했으니 불평불만이 많아 세상을 풍자하곤 했지요.

“김선달이 친구들과 놀이를 가는데 어떤 여자가 개를 데리고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장난기 많은 김선달이 내기를 제안합니다. 저 여자를 웃겼다가 화를 내면 술을 사라구요.”

그러자 김선달이 성큼성큼 다가가서 개 앞에서 엎드려 절하며 아버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여자가 우스워서 입을 가리고 호호 웃었습니다. 멀리서 친구들은 김선달이 어쩌나 싶어 바라보는데 엎드렸다 일어난 김선달이 이번에는 여자에게 절하며 어머니! 하는 것이 었습니다.

“졸지에 개의 마누라가 된 여자가 노발대발하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의 절로 여자를 웃겼다가 화냈다가 한 것이지요.”

양성지 영감이 흐흐 웃었습니다. 그 웃음소리마저 더듬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그, 그, 다, 다음, 에. 왜, 왜 봉, 봉이.”

“네. 봉이라는 별명이 붙은 연유를 말씀드립지요. 마음씨 고약한 닭 장사가 있었습니다.” 천성이 심술 맞고 사기꾼 기질도 많아 미움 받는 장사치가 있다는 소문을 들은 김선달은 시골 촌부의 복장을 하고는 시장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는 닭을 가둔 상자를 빙빙 돌며 닭을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닭 장사는 닭을 사려는 줄 알았는데 촌부의 말은 달랐습니다.

“이 새가 봉황이라는 새유? 우리 집에 있는 그림하고 비슷한디.” 김선달이 먼 동네 사투리를 쓰며 묻자 닭 장사는 어리숙한 촌부를 속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렇소. 이 새는 봉황이라고 하오.”

“오, 그래유? 얼마나 주면 살 수 있을 까유?”

닭 장사는 촌부의 허리춤에 감은 엽전을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원래 봉황은 삼십 량인데 특별히 다섯 량을 깎아 스물 닷냥만 내라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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