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학

나무남자

윤성학


나무가 돼야겠다
다음 생이 오기 전에
눈 쌓인 숲길에 하얗게 벗고 서서 영하를 견디는
눈부신 은사시는 말고
누군가를 멀리 보낼 때 언덕에서
내게 어깨를 빌려 주었던 느릅나무도 말고
약수터에서 물 마시느라 고개를 들면
이마에 그늘을 장만해 주는 상수리도 말고
아프게 죽은 조선의 민씨 여인이 아까워
백 년을 울고 서 있는 느티나무도 아니라
나무가 돼야겠네
뿌리에 줄을 친친 감고
4.5톤 트럭에 묶여 누운 채로
흔들리며 뒤채며
의금부로 압송되던 혁명가처럼 머리채를 끌리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어디 심어질지 알지 못하네
알 수 없어
애태우며 마음 쓰며
머물지 못하고 매일 어디론가 가는 나무
길 떠나는 나무가 돼야겠네

[프로필] 윤의섭 : 경기 시흥, 국문학 박사, 애지 문학상, 시집 <천국의 난민>외 다수


시 감상
무엇이 된다는 것. 무엇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것. 내가 아닌 다른 것이 되고 싶다는 것은 ‘지금’이라는 시간이 내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좀 더 깊이 생각하면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다른 만족을 향한 변화. 최선이 아닌 차선의 선택이 아니라, 둘 다 최선을 다 해야 된다는 것에 방점을 두고 싶다. 5월이다. 문득 저렇게 많은 잎을 달고 있는 나무는 부자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나무가 되고 싶다. 퍼런 잎을 듬뿍 매달아 놓은...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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