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형 안동대학교 명예교수

인문학과 예술은 배부른 사람이나 찾는 것이라고 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직접 농사를 짓거나 기술을 익혀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여유가 있으면 경제활동을 본격적으로 하여 부를 축적한 뒤 의료나 법률 활동으로 안전한 삶을 도모하고, 마지막으로 인문 및 예술을 통해 우리의 정신적 품격을 높여야 한다고, 상식적으로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만일 이런 일이 일부, 즉 가진 자를 중심으로만 이루어져 사회적 격차가 생겨나고 설상가상으로 그런 빈부의 격차가 고착화하면 가난한 사람의 배부름이나 행복은 도달하지 못 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이런 상식에 의문을 제기함과 동시에, 거꾸로 인문학과 예술의 참여가 인간 수련의 마지막 코스가 아니라 시작이자 근본이라고 주창한 사람이 나왔다.

미국의 언론인이자 사회비평가인 얼 쇼리스(Earl Shorris, 1936∼2012)가 그 사람이다. 그는 빈익빈 부익부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 인문학 전도사이다. 그는 중범죄자 교도소에서 한 여성 재소자를 만나, 인문학을 배웠는지 유무로 빈부가 갈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것을 계기로 쇼리스는 1995년 뉴욕에서 노숙인, 마약중독자, 재소자, 전과자 등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교육과 정인‘ 클레멘테 코스’를 만들었다. 코스 등록자들은 일반 대학 수준으로 철학, 문학, 예술 등을 배웠고, 이것이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플라톤의 대화록을 읽고,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독해하고 바이런의 시를 읊으면서 이 가난한 사람들은 자존심을 회복하게 되었다. 자존심은 이들에게는 먹을거리와 잠자리보다도 더 시급하게 챙겨야 했던 삶의 본질적 요소였다. 이것은 오로지 인문학 교육을 통해서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실제로 클레멘테 첫 학급에서는 치과의사, 간호사, 패션디자이너가 배출되었고, 이 과정의 이수자 중 절반 이상이 사회복귀에 성공했다. 현재도 전 세계로 클레멘테 코스가 확장되고 있으며 그영향 또한 더 커져가고 있다. 쇼리스는 클레멘트 인문학 코스를 창설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립 인문학 대통령 훈장을 받았는데, 암 투병을 하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인문학이 희망의 끈임을 보여주었다.

KBS는 2008년에 ‘가난한 이들의 철학자 얼 쇼리스의 희망수업’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해서 그의 인문정신을 소개했다. 한국에서도 2005년 클레멘테코스의 정신을 이어받아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교육과정인 ‘성프란시스 대학’이 문을 열고, 현재까지 졸업생을 꾸준히 배출한다. 또 여러 대학에서는 단기과정으로 인문학 연수과정을 만들어 일반인들에게 인문학의 가치를 실용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는 『희망의 인문학』을 통해 클레멘테 코스를 뒷받침해주는 이론과 기본적인 틀을 제공하고『, 인문학은 자유다』를 통해 전 세계 각지에서 인문학 수업을 한 사례들을 보여주었다.

인문학 교육은 단순히 야학에서 느끼는 배움의 보람 차원을 넘어, 교수자와 학습자 모두가 인간 본연의 가치를 심층적으로 재발견하고 삶의 가치를 재정립하는 놀라운 변화들이 일어난다. 종교나 기능교육이 정해진 목표를 향해 약자들에게 기계적인 변화를 유도하고 경험케 한다면, 인문학 교육은 항상 참가자들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실존적으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도록 만들어 감으로써, 각 시간 시간이 새로운 인격의 변화를 황홀하게 체험하는 놀라운 엑스타
시를 맛보게 한다.

이제 젊은 김포시에서도 인문학의 새로운 시도와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젊은 도시, 덜 갖추어진 도시, 따라서 미흡한 도시의 문화가 시작부터 가난한자들에게 따뜻한 인문학을 보급하여 인간다운 자존심을 갖게 하고 동시에 서로가 공감하는 인간문화를 만들면서, 정말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미래의 인문도시로 우뚝 서기를 꿈꿔본다.

인문학은 우선적으로 배우고 익혀 풍성한 개인과 사회를 기초 지우고, 동시에 인간 중심의 문화를 만드는 수단과 도구이자 동시에 목표이기도 하다. 이제 다 같이 따뜻한 인문학의 첫 걸음을 내디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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