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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혹부리 영감의 김포이야기> 피리 부는 소년과 각시당
최영찬 소설가

김우희가 깔깔대고 웃었습니다. 저도 따라서 웃었습니다. 뱃사공에 패해서 도망치는 명나라 사신의 모습을 상상하면 누구나 웃을 겁니다. 길 가던 사람이 보면 나를 미쳤다고 하겠지요.

“풍문 아저씨, 다른 이야기 없어요? 남자 여자 사랑이야기 같은 것.” 역시 여자들은 멜로드라마에 약합니다. 재담에는 그런 것이 많지 않아 잠시 고민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것을 하기로 했습니다.

“닥터 김, 처녀 귀신도 잘생긴 남자를 좋아할까요?” 내 질문이 뜬금없었는지 김우희가 머뭇 머뭇하다가 피식 웃어 보였습니다. 그 말은 귀신도 예쁜 것은 밝힌다는 것이지요. 갑자기 우울해졌습니다. 혹 달린 늙은 남자이니까요.

“귀신은 그럴지 몰라도 나는 마음씨 착한 남자가 좋아요. 아저씨 같은. ”나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아, 역시 김우희는 도야지 아씨의 환생이 분명합니다. 울컥하는 것을 참고서 재담을 꺼내기로 했습니다.

“우선 생각나는 것을 말씀드리지요. 옛날에 어느 배 한 척이 지나가다 풍랑을 만나 어느 섬에 피신하게 되었습니다. 며칠이 지나도 가라앉지 않아 출항할 수가 없었습니다. 배에는 소년이 타고 있었는데 용모가 매우 아름다웠고 피리를 잘 불었습니다.”

소년은 섬에 머무는 동안 할 일도 없어 이리저리 쏘다니다가 당(堂)집을 발견하자 그 옆 바위에 앉아 피리를 불었습니다. 그 피리 소리가 얼마나 아름답고 구슬픈지 듣는 사람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선원들은 그 피리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위로를 받았습니다. 얼마 후에 바람이 가라앉자 배를 띄웠는데 배가 영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다시 육지로 올라와 하룻밤을 지냈는데 선장의 꿈에 아름다운 여자가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나는 이 섬을 지키는 여신이다. 내가 소년의 피리 소리에 반했으니 놔두고 가거라. ”내가 마치 여신이라도 된 듯이 목소리 연기를 하자 우희는 재미있었는지 호호 웃었습니다. 하지만 꿈 때문에 소년을 사람도 별로 없는 작은 섬에 내버려 둘 수는 없었습니다. 개꿈으로 여기고 다시 배를 띄웠지만 배는 나가지 못했습니다. 다시 배에서 내린 선장은 소년 몰래 선원들에게 어젯밤 꿈을 말했습니다. 사람이 안 사는 무인도도 아니니 굶어 죽을 일이 없을 것이니 놔두고 가자는 의견이 압도적이 었습니다. 다만 소년의 피리 소리를 더 듣지 못한 것만이 유감이었습니다. 결론이 나자 선장은 다시 배를 띄웠습니다. 그리고는 소년에게 말했습니다.

“애야, 내가 당집 안에 해도를 떨어뜨린 것이 지금 생각났구나. 어서 가서 가져오너라. ”아무것도 모르는 소년은 당집을 향해 달음박질쳤습니다. 그러자 선장은 배를 움직였습니다. 당집까지 단숨에 달려간 소년은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지만, 아름다운 여신의 화상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샅샅이 찾아보았지만, 해도는 없었습니다. "소년은 선장이 착각한 것으로 알고 바닷가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멀리 떠나가는 배만 보고는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소년은 울다 울다 지쳐서 당집으로 올라가 피리를 불었습니다. ”온종일 피리를 불다가 지친 소년은 결국 쓰러져서 죽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처녀인 여신이 소년을 데려갔다고 생각하고 소년을 바위 밑에 고이 묻어 주고, 여신의 화상 옆에 소년의 화상을 그려 함께 모시게 되었습니다.

“어머, 로맨스가 아니라 잔인한 짝사랑이군요.” “그렇지요. 재담에 러브스토리는 별로 없어요. 닥터 김이 사는 곳에는 영화가 많겠지요?” 우희가 내 말에 배시시 웃으며 말했습니다. “직업이 의사라 영화관에 갈 시간이 없어요. 대신 로맨스 소설을 많이 보지요. 재미있는 이야기가 없을까요? 악당을 꾀로 물리치는 것이라든가 하는.”

김포신문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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