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손을 들여다보다가

하종오

나는 빈손을 들여다보다가
누군가의 손이
철근과 시멘트와 물을 주물러서
땅에서 빌딩과 아파트를 세우고
고압송전탑을 세웠다는 걸 상상하고는
주눅 든다
나는 손가락 하나를 세움으로써
누군가의 몸을 따라 서게 한 적도 없다
나는 손가락 하나를 눕힘으로써
누군가의 몸을 따라 쓰러지게 한 적도 없다
누군가가 나를 안아 일으킨 적도 없다
다시 나는 빈손을 들여다보다가
누군가의 손이
두뇌와 조직과 자본을 주물러서
땅에서 안테나와 레이더를 세우고
마침내 힘센 크루즈미사일과 토마호크미사일
핵미사일을 하늘까지 세웠다는 걸 깨닫는 순간
고개 발딱 쳐든다

[프로필]
하종오 : 경북 의성, 현대문학 추천, 시집<베드타운>외 다수



시 감상
누군가의 손은 빌딩을 세우고 다른 누군가의 손은 병자를 고치고, 또 다른 누군가의 손에서 미사일이 날아가고, 누군가의 손가락 끝에선 목련이 피고, 누군가의 손에선 따듯한 온기가 포개져있을 어떤 날, 내 빈 손의 손금은 왕후장상의 운명이라며 흘흘 자위의 웃음을 짓는 날, 멀리 봄이 다가오고 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요즘 상황도 이 또한 지나가고 나면 빈 손위에 놓인 다만 어떤 날의 풍경일 것을, 그렇게 생각하니 헛웃음만 나오는 것을...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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