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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들려주는 교실이야기>두 장의 성적표
  • 조이오투 교사모임
  • 승인 2020.03.18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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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훈이는 키도 크고 잘생겼으며 운동까지 잘하는 아이다. 아이는 활달하고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해 학교에서 바른 아이로 알려져 있다. 학기 초 반장 선거에서는 몰표를 받아 반장도 되었다. 무엇보다 재훈이는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간절한 꿈을 가지고 있는 아이였다.

학부모 상담 주간, 재훈이 부모님이 교무실로 왔다.

“재훈이는 학교생활을 잘 하고 있습니다. 교우 관계도 좋고요. 걱정하실 일이 없으실 것 같아요. 반장 역할도 잘하고 있어 제가 늘 고맙게 생각하죠.”

재훈이가 바르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씀 드리니 두 분이 밝게 웃으신다.

“학교에서 특별히 알아야 하거나 아이를 어떻게 이끌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으신지요?”

“재훈이를 외고나 국제고에 보내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쪽으로 준비를 해 주셨으면 합니다.”

“네, 그런데 특목고를 보내시고 싶은 특별한 이유가 있으세요?”

“나중에 법조계 관련 일을 했으면 해서요. 돈은 저희가 많이 벌지 않습니까? 아이는 명예를 가지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됐으면 해요. 다행히 재훈이도 그쪽을 희망하고 있고 성적도 어느 정도 되는 것 같으니 잘 이끌어 주세요.”

아버지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 하시니 뭐라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재훈이는 분명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네... 알겠습니다. 재훈이랑도 상담해 보고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라고 일단 대답을 했다.

상담을 마무리 하고 재훈이의 생활기록부를 보았다. 특목고에는 원서도 못 낼 어중간한 성적이었다. 아이의 성적을 잘 알고 있는데 외고나 국제고를 쓴다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무턱대고 안 된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일단 상담 수첩에는 ‘특목고(외고, 국제고) 희망’이라고 적어 놓았다.

5월, 첫 지필 평가 성적이 나왔다. 재훈이는 1, 2학년 때와 비슷한 성적을 받았다. 재훈이를 교무실로 불렀다.

“재훈아! 엄마 아빠는 너를 특목고에 보내고 싶어 하시던데...”

“네, 알아요.”

“그래? 그런데 네 성적으로는 어려울 것 같은데. 게다가 너는 연예인이 되고 싶다며?”

“네......”

재훈이 뭔가 속이고 있다고 느낀 것은 대답하는 태도 때문이었다. 평소 활달하던 모습과는 달리 목소리도 작고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너 선생님한테 속이는 거 있니? 만약 있으면 말 해. 샘이 도와줄게.”

“......”

“혹시 성적표 고쳤니?”

설마 하는 마음이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넘겨짚어 물어 보았는데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재훈이가 성적을 조작한 것은 중1 때부터였다. 어릴 때는 사교육의 힘으로 성적을 잘 받았고, 부모님은 그런 재훈을 기특하게 생각해 점점 기대가 커졌단다. 하지만 중학교 때 성적이 충격적으로 떨어졌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성적표를 다시 만들어서 부모님께 보여 드리는 것이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다음 시험을 잘 보고 말씀드리려고 했었다. 하지만 성적은 계속해서 그대로였고, 결국 중3이 될 때까지 속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아이는 말을 하고 엉엉 운다. 아이가 느끼는 무게는 생각보다 훨씬 무거운 것이었다. 물론 행동이 올바르지는 않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잘 생활해 준 것이 기특할 정도였다.

“재훈아, 언제까지 부모님을 속일 수는 없잖아. 선생님이 말씀드릴까?”

“안 돼요! 그럼 저 죽어요.”

아이가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어린 마음에 복잡했으리라. 부모의 기대에 못 미치는 자신을 원망스러워하는 듯한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성적표를 조작한 것은 재훈이었지만 그렇게 하도록 만든 것은 재훈의 부모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훈이에게는 일단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는다고 안심을 시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부모님을 학교로 오시라고 했다. 그냥 학급 활동으로 상의드릴 것이 있다고 했다.

학교에 오신 부모님을 상담실로 모시고 갔지만 바로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심호흡을 크게 한번 했다. 그리고는 단단히 마음을 먹고 말을 꺼냈다. 우선 나의 이야기를 다 듣고 궁금한 것을 물어 보실 것. 그리고 이 일로 절대 아이에게 폭력을 쓰지 않을 것을 약속 받았다. 약속의 내용에 당황하셨지만 나의 단호한 표정을 보고는 두 분 다 동의를 했다.

우선 아이가 잘하는 것을 말씀 드렸다. 체육 대회 때 반장으로서 아이들을 이끌고 응원을 정말 잘 했다는 이야기며, 학급 활동을 할 때에도 분위기를 잘 이끈다는 이야기며... 그리고 본인은 법조계보다는 연예인을 하고 싶어 한다고 했다. 여기까지 이야기만으로도 부모님은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았다.

이어서 성적이야기를 꺼냈다. 부모님께 효도하려는 마음, 성적이 떨어졌을 때 본인이 겪었을 어려움, 주위의 기대 등으로 아이는 성적표를 조작하는 결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그리고 지난 2년 동안 받은 재훈이의 진짜 성적을 보여드렸다.

한 동안 두 분은 생활기록부만 쳐다볼 뿐 말이 없었다. 큰 기대를 했는데, 그리고 아이가 잘 따라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전부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았으니 실망과 충격이 클 것이라는 것은 이해가 되고도 남았다. 나는 아이를 혼내면 안 되는 이유와 성적표를 조작해야 했던 원인을 없애 줘야 한다는 것을 말씀 드렸다.

다음 날, 의외로 밝은 모습으로 학교에 온 재훈이를 교무실로 불렀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동안 성적표만 받으면 또 부모님을 속여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답답했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어요.”

다행이었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공부하기로 했단다. 또 자신의 진정한 꿈인 연예인에 대해서도 말씀드렸단다. 대신 고등학교 진학해서도 마음이 변치 않으면 그 때는 본격적으로 도움을 주시기로 했다.

재훈은 학급 반장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잘 했다. 성적도 점차 올라갔다. 원서를 쓸 때 학교에 들른 부모님들도 밝은 모습이었다. 그동안 아이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 당신들의 불찰이라고도 했다.

몇 해 후, 수학능력평가 시험에 감독을 가서 우연히 재훈이를 만났다. 2교시 수학시험을 마친 점심시간. 뒤에서 누군가가 “상현 샘!” 하고 나를 부른다. 재훈이었다. 아이는 키도 훨씬 더 크고, 몸도 건장해져 멋진 남자로 성장한 모습이었다.

“어! 재훈이구나. 잘 지내지? 근데 여긴 왜?”

“대학 가려고 시험 치러 왔어요. 연극 영화과 갈 거예요. 지금은 서울에 있는 ☆☆기획사에서 연기랑 노래 연습도 하고 있어요.”

아이가 말한 기획사는 나름 연예계에서 이름이 있는 회사여서 마음이 놓였다.

“중3때가 가장 기억나요. 하하하. 그 때 성적표 조작한 거 샘한테 들켰잖아요.”

“기억하는구나.”

“네, 그 일로 해서 저는 부모님과 더 잘 지내게 되었어요.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는지 모르지만 화도 안 내시고 오히려 그 날 저녁에 외식을 했다니까요.”

너스레를 떨며 고맙단다. 성적표 사건이 아이에게도 큰일이었나 보다. 지금껏 기억하고 있으니.

아이가 자신이 희망하던 진로로 나아가고 있는 모습에 대견했다.

“시험 잘 봐! 그리고 꼭 TV에서 볼 수 있게 열심히 해라.”

“예, 선생님!”

재훈은 소리치며 두 손으로 하트를 크게 그려 보이며 시험 보는 교실로 들어간다. 아이의 밝은 모습을 보며 교사로서 느낄 수 있는 큰 기쁨을 느꼈다. 아마 오래지 않아 재훈이를 TV에서 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조이오투 교사모임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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