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희는 얼굴에 주근깨가 많은 친구이다. 그래서 별명이 예전 TV 드라마에 나오는 ‘말괄량이 삐삐’의 삐삐이다. 그리고 몸도 다른 아이에 비해 약할 뿐 아니라 지적 능력도 일반 아이들에 비해 떨어지는 장애를 갖고 있다. 대부분 교과도 장애인들이 있는 ‘어울림 학급’에서 배우고 있다.

9월의 어느 날, 우리 반은 10월에 진행할 학급 활동의 주제를 정하기 위해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 때 진희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음악회...”라고 말했다. 잠깐 동안 침묵이 흘렀다. 아이들은 생뚱맞은 제안이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왜냐하면 2학년 교육 과정에는 ‘음악’ 과목이 없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중등 교육에 특정 과목을 1개 학년이나 2개 학년 동안 집중해서 배우는 제도인 ‘과목 집중 이수제’가 있었다. 주요 과목들을 제외한 몇몇 과목에 한정되어 이루어졌는데 우리 학교는 음악이 그랬다.

사회를 맡은 반장 영은이가 서기인 명훈이에게 일단 음악회도 활동 주제의 후보로 써 달라고 말했다. 그 후에도 체육 대회, 봉사활동 같은 의견이 나왔다.

오랜 회의 결과, 뜻밖에도 다음 달 활동은 음악회로 결정이 났다. 회의 과정을 지켜보던 진희는 결과에 기분이 좋았는지 웃고 있었다.

본격적인 음악회 준비를 위해 임원들에게 합창과 중창, 그리고 개인 악기 연주자를 조사해 오라고 했다. 개인 목록을 보니 ‘플루트 연주-임진희’가 눈에 확 띄었다. 깜짝 놀랐다. 호흡기가 약해 병을 달고 사는 아이, 간단한 운동조차 할 수 없어 체육 수업 시간이면 의자에 앉아 있는 아이가 플루트 연주라니...

내색은 하지 않았다. 빠른 걸음으로 교무실로 돌아와 진희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진희는 음악회가 결정된 날 집에 와서 많이 기뻐했다고 한다. 그리고 진희가 플루트 연주를 배우는 것은 호흡기가 약해 병원에서 치료 차원으로 권했기 때문이었단다. 하지만 진희는 플루트 부는 것을 힘들어하고 싫어했는데, 음악회를 하기로 결정된 후로는 달라졌다고 한다. 친구들 앞에서 꼭 연주를 하고 싶다며 집에 오면 스스로 플루트 연습을 한다고 했다. 어머니도 걱정되는 목소리였지만 진희만큼이나 학급 음악회를 기대하고 계시는 듯 했다.

하늘이 맑은 가을, 토요일 아침. 학교 근처에 있는 작은 교회에 우리 반 아이들이 모였다. 학부모님과 다른 가족들까지 족히 백 명쯤 되었나 보다. 개인 독창, 중창, 그리고 악기 연주...

드디어 진희 차례가 되었다.

“다음 순서는 말괄량이 삐삐, 임진희 양의 플루트 연주가 있겠습니다.”

진희가 볼이 빨개진 채로 걸어 나왔다. 진희는 제법 연주자 같은 옷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한 차례 소리를 내 보더니 인사를 하고 연주를 시작했다.

“빰빠라 라라~~~~~. 빰빠라 라라~~”

진희는 플루트로 천사의 소리만큼이나 아름답게 ‘에델바이스’를 연주하였다. 진희의 플루트 연주는 교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집중시켰다.

진희가 연주를 마치자 교회는 박수소리로 가득 찼다. 돌아보니 뒷자리에 앉아 계신 진희 어머니도 박수를 치시며 눈물을 훔치고 계셨다.

마지막 합창곡인 ‘네버 엔딩 스토리’를 부를 때도 진희는 플루트로 반주를 맡았다. 피아노, 기타, 리코더, 그리고 플루트의 반주에 아이들이 힘차게 합창을 했다.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가사처럼 ‘이 아이들도 언젠가는 지금을 추억하며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 그런 날이 있겠지.’라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했다.

그렇게 음악회는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며칠 후 진희 어머니가 학교로 찾아 오셨다. 이번 음악회가 진희에게 큰 변화를 주었다고 하셨다. 이젠 플루트를 연주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희에게 꿈이 생겼다는 사실이 어머니는 너무 기쁘다고 하셨다. 연주회를 마친 날 밤에 진희가 “엄마, 플루트 연주가가 되고 싶어요.”라며 비장애인 아이들처럼 또렷하게 말해 너무 놀랐고, 이젠 매일 걱정스러울 만큼 플루트 연습을 한다고 했다.

진희가 졸업을 하고 몇 해가 지난 5월, 진희로부터 학교로 찾아가도 되겠냐는 전화가 왔다. 당연히 오라고 했다.

진희가 학교에 오기로 한 날은 일반 아이들이 학교에 찾아온다고 할 때 느꼈던 기분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진희가 늘 한계를 인정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장애인에 대한 세상의 편견과 싸우느라 많이 지쳤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희는 어머니와 같이 학교에 왔다. 여전히 얼굴에는 주근깨가 있었지만 옅게 화장을 해서인지 많이 예뻐진 얼굴이었다. 나는 안도했다. ‘생각보다는 힘든 세상을 잘 견뎌 내며 지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선생님, 잘 지내셨죠?”

진희 어머니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내가 대답을 채 하기 전에 진희가 “선생님, 저 대학교 다녀요”라고 했다. 진희 어머니가 말씀을 이어갔다.

“진희가 운 좋게도 서울에 있는 ‘ㅂ예술 대학’에서 플루트 공부를 하고 있어요.”

나는 축하의 말을 전하며 진심으로 기뻐 눈물이 날 뻔 했다. 5년 전 아이들 앞에서 ‘에델바이스’를 연주하던 아이가 꿈을 이룬 것이다. 기뻐하는 나를 보시는 진희 어머님의 눈가에도 눈물이 반짝였다. 오래 전 교회 뒷자리에서 진희의 연주를 들으시며 보였던 눈물이 떠올랐다. 그렇게 진희는 한참을 음악회 때의 이야기를 하다 집으로 돌아갔다.

언제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진희는 연주회를 할 것이고 나는 진희의 연주를 꼭 들으러 갈 것이다. 그날을 기다리며 나는 플루트 연주가의 꿈을 갖고 있는 또 다른 삐삐를 위해 교실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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