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사설·기고 기고
[기고]<혹부리 염감의 김포이야기>너그럽고 현명한 정승
최영찬 소설가

준비했던 황희 정승이야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전에 황희 정승에 대해 말한적이 있지만 이악스러운 상인에게는 들려줄 만한 이야기라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세종대왕 밑에서 오랫동안 고위직이 있었고 십여 년 전에 돌아간 분이라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황희 정승 아시지요? 그분이 늘그막까지 벼슬하다 물러나 집에 머물러 매일 독서를 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집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한참 무르익은 복숭아를 따는 것이 었습니다. 이 소란에 정승이 고개를 삐죽 내밀고 말합니다. 나 먹을 건 남겨놔라. ”하지만 조금 뒤에 나가보니 아이들이 몽땅 따 가지고 간 것을 보자 허허 웃을 뿐이었습니다.

아침저녁 끼니때마다 집안의 노비 아이들이 우하고 덤벼들면 숟갈로 밥을 퍼서 덜어주고는 했습니다. 아이들이 서로 장난을 쳐서 방을 어지럽혀도 그냥 놔두었습니다. 뒤늦게 중년의 여종이 와서 아이들을 꾸짖어 쫓아버리고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소리 쳤습니다. “늙은이가 방구석에서 책만 들여다보지 않고 어지럽히는 것을 야단도 안 치나?” 아랫것이 감히 주인 어른에게 험악한 욕을 해도 빙그레 웃을 뿐이었습니다. “아, 정승까지 한 분이 왜 그리 매가리가 없나? 나 같으면 회초리가 춤을 출텐데.” 어떤 객주의 말에 모두 까르르 웃었습니다.

내가 말을 이었습니다. “철없는 아이나 무지한 종들에게는 너그러웠지만, 자식이나 부하에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큰아들 황수신이 기생 집을 드나드는 것을 알고 앞으로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그리하겠다고 하고는 시간이 좀 흐르자 아버지 눈을 피해 몰래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늦은 밤에 대문을 들어가는데 등불을 들고 서 있는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늦은 밤에 다니느라 고생이 많으시오.” 아버지가 고개를 숙여 절을 하니 아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물었습니다.

“아버님, 수신입니다. 왜 이러십니까?”

“알고 있소. 아비가 아들에게 충고했건만 듣지 않으니 어찌 아비라 할 수 있겠소? 그러니 오늘부터 댁은 내 아들이 아니라 손님일 뿐이오.”

그 말에 아들 수신은 그 자리에서 엎드려 잘못했다고 빌었습니다. 간신히 용서를 받고는 다시는 기생 집에 다니지 않고 학문 연마에 열중해 벼슬길로 나아갔습니다.

“황희 정승은 외지에서 큰 공을 세우고 들어온 김종서에게 신임 인사를 받았습니다.” 김종서는 문관이었지만 함경도로 가서 소란을 피우던 여진족을 제압하고 의기양양해서 돌아왔습니다. 평소 온유했던 황희 정승의 얼굴이 엄숙해지더니 인사 문서를 들여다보며 하나씩 짚어가며 잘못된 것을 꼬집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옷차림새나 태도를 지적했습니다. 그날부터 김종서는 호된 시집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다른 벼슬아치들 에게는 잘못된 점이 있으면 부드럽게 타이르는 황희가 웬일로 김종서가 올린 문서는 내용이 모자라면 다시 해오라고 툇짜놓고 고심 끝에 완벽하게 만들어가면 이제는 글씨가 어쨌느니 하면서 트집잡는 것이었습니다.

현대에서는 이런것을 갑질이라고 한다지요? 다른 벼슬아치들은 황희가 젊은 김종서가 자기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것이라고 수근댔습니다. 함경도에서 큰 공을 세워 돌아온 뒤 칭송만 받던 김종서는 직속상관에게 야단만 맞으니 잔뜩 위축되어 황희만 보면 옷깃을 바로 하고 자세를 똑바로했습니다. 그러기를 일 년 뒤에 황희가 임금에게 사직서를 냈습니다. 세종대왕은 황희의 경륜과 조직 장악력이 필요 했기에 말렸으나 좋은 후임자가 있다고 추천하고 물러선 것입니다. 마지막 날 황희가 김종서를 불렀습니다. 잔뜩 긴장한 종서에게 웃으며 말합니다. “그동안 내가 미안했네. 내 자네가 큰 재목인 줄 진즉 알았으나 공을 세운 것으로 오만해졌기에 기를 죽여 겸손을 배우라는 것이었네. 내 자리는 자네에게 넘겨 주기로 주상께 올렸네.”

김포신문  gimpo1234@naver.com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

김포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포토뉴스
  • 1
  • 2
  • 3
  • 4
  • 5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