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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염치와 눈치를 넘어
신상형 
안동대학교 명예교수

기원 전 5~6세기에 걸쳐 크세노파네스 Xenophanes라는 철학자가 남부 이탈리아의 엘레아에 살았다. 원래 터키의 이오니아 지역 콜로폰 출신이지만 오랜 방랑생활 끝에 이곳에 정착하여 파르메니데스, 제논과 더불어 이 소도시를 명물로 만들었다. 이들로 인해 근원적 존재를 최초로 탐구했던 고대철학의 한 흐름인 ‘엘레아 학파’가 탄생되었기 때문이다. 엘레아학파는 밀레토스학파와 더불어 변화하는 모든 삼라만상의 현상 뒤에는 불변하는 원질arche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원질 자체에 대해서는 변화할 수 있다(밀레토스), 없다(엘레아)로 그 입장이 갈라졌다.

터키와 이탈리아 사이의 수많은 섬들을 떠돌아다녀 본 크세노파네스는 사람들의 방탕과 미신적인 무지몽매함을 안타까워하면서 국가의 타락을 한탄하였다. 우국지사로 불린 그는 타락의 이유를 각 지역의 상대주의적 신관이라고 생각했다. 지역마다 신들을 편의적으로 자기들의 모습을 따라 조작했던 것이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신들이 새까맣고 코가 납작하다고 주장하고, 트라키아 인들은 신들이 눈이 파랗고 머리털이 빨갛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크세노파네스는 신이란 이런 자기중심적인생각을 넘어‘, 신이란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다. 유일한 것, 우리가 생각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위대한 것, 모양이나 생각에 있어서 죽을 인간과는 다른 어떤 존재여야 하며, 언제나 살아있는 존재여야 한다.’고 크세노파네스는 주장했다. 이렇게 초월적 신 관념이 형성되었다. 이를 통해 서양은 일찍부터 전체를 아우르는 표준화된 보편적 질서와 가치체계가 자리를 잡아 사회를 안정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모든 방면에 걸쳐 ‘자기중심적인 신 관념’과 같은 절대적 가치기준을 고수하는 일이 횡행하고 있다‘. 조국사태’이후 사람들은 패를 지어 트라키아 인들이‘ 신은 눈이 파랗고 머리털은 빨갛다’고 주장하듯 모든 일을 자기 정당화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오직 자기가 속한 집단 내의 지지자의 발언은 무조건 믿고 따르는 팬덤fandom 현상이 일상화되는 추세도 나타났다. SNS를 통해 이런 현상은 더 크고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사회구조상 이런 물결을 막을 대안이 전무하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안타깝게도 이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우리가 부정적으로 쓰던 말이 있다. 소신이 없어 할 일을 제대로 못하는 것을‘ 남의 눈치를 본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을 다른 편으로 보면 긍정적으로 이해된다. 세련되었다, 예의가 바르다, 헌신적이다 따위의 말은 남의 눈치를 잘 보는 사람에게 붙는 수식어이다. 신사적이다 라는 말은 남의 눈치를 보면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하거나, 남자로서 씩씩하게 약자를 도운 사람에게 쓰는 표현이다. 헌신적이라는 표현은 눈치를 살피고 살펴 도움을 받는 사람과 같은 눈높이에 이르러 불편을 못 느끼게 한 정도의 행동을 서술하는 데 쓴다.

염치란 눈치를 넘어서 그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해 내가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한 일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일컫는다. 그것은 또한 책임을 통감하는 마음도 포함한다. 이것은 자신과 일이 단순히 자기의 이기적인 목적을 넘어서는 사태를 깨닫는 데서 이해되는 기제이다. 이런 마음가짐은 바로 한 인격의 성숙을 드러내 보인다. 사회적 지도자는 반드시 이런 염치와 눈치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유치한 것은 지도자가 이런 두 가지 ‘치’를 내던지고 결코 자신의 잘못을 인정치 않는 오만불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맹자는 일찍이 사단을 설파했다. “측은한 마음은 인의 시작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정의의 시작이고, 양보하는 마음은 예절의 시작이고, 잘잘못을 가리는 마음은 지혜의 시작이다“ 이것은 사단(네 가지 시작점)의 내용이다.

측은한 마음, 부끄러운 마음, 양보하는 마음, 잘못을 가리는 마음은 한마디로 반성하는 마음이다. 반성이란 돌아보는 것이다. 돌이킴으로써 부족함을 깨달아 겸손해지고, 나아가 자신을 더 바람직하게 바꾸어 가는 것이다. 자신을 이렇게 냉정하게 고쳐 가다보면 어느새 주위에서 가까워진 많은 이웃들을 발견하게 될것이다.

김포신문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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