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단 한 번도 선생님이 꿈이었던 적이 없다. 사범대학에 다니는 동안에도 다른 직업을 갖고 싶었다. 그러나 대학교 4학년이었던 11월, 우리나라에 IMF라는 불청객이 한파를 몰고 왔다.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 없어 과 사무실을 통해 시흥시에 있는 ○○고등학교 기간제 교사를 시작했다.

그곳의 첫 입학생이 2학년일 때 아이들을 처음 만났다. 나와 고작 5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아이들이었다. 교실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침을 뱉는 아이, 전 날 먹은 술 때문에 엎드려만 있는 아이, 자기 마음을 몰라준다고 수업 중에 나가버려 다음날 새벽에 피투성이로 나타나는 아이도 있었다. 나로서는 그렇게 거친 아이들은 처음이었다. 불인 줄 알면서 뛰어드는 불나방 같은 아이들. 그 위태로운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언니였고, 누나였고, 잘 보이고 싶은 누군가였다. 그 마음들을 온전히 받다보니 내가 교사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마음까지 들었다. 하지만 난 공립학교 기간제 교사였다. 다음해 2월이면 떠나야 하는.......

그 곳을 떠나 사립학교에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몇 해 지나지 않아 재단과의 문제로 학교에 분규가 발생했다. 소용돌이에 휘말린 나는, 믿었던 동료가 등을 돌리는 모습에 슬펐고 수많은 오해들이 쌓여가는 집단의 분위기에 지쳤다. 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던 기간제 교사 때의 자만심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다. 하루하루 우울하게 버티던 중 12월이 왔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아이들은 틈나는 대로 손카드를 제작하느라 분주해 보였다. 하지만 1년으로 반복되는 교사 생활에 대한 허무함, 희망과 신뢰가 없는 학교 분위기에 절망하던 나에게 아이들의 손 카드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크리스마스 캐롤에도 들뜨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내용으로 여러 아이들에게 메시지가 왔다.

‘12월 21일 저녁 6시, 김포시 월곶면 000으로 초대합니다. 선생님, 꼭 참석해 주세요!’

낯선 길을 돌고 돌아 어두워져서야 도착한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손수 만든 소박한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보였다. 점점 젖어드는 눈시울 너머에 ‘2학년 9반, 오늘을 기억해. 영원하자 우리.’ 라고 쓰여 있는 색도화지들이 있었고, 한 쪽에는 담임에게 쓴 손 카드가 쌓여있었다. 우리는 함께 밥을 먹으며 선물을 교환하고 단체 게임도 하며 늦은 밤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때의 그 아이들이 이듬해 2월, 내 결혼식에 반주와 축가로 끝까지 빛을 내주었다. 아무 조건도 없이 나에게 사랑을 주는 아이들의 순수한 에너지 덕분에 말라가는 우물에 다시 샘이 솟아났다. 1년짜리 반복되는 메마른 선생님으로 남겨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갈증 날 때 찾아오면 한 바가지의 물을 퍼 줄 수 있는 마르지 않는 샘이 되고 싶었다.

학교의 분규가 막바지에 이를 즈음에 중학교로 발령이 났다. 중학생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처음이라는 낯설음이 점점 익숙함으로 바뀌어 가던 중에 또다시 고마운 아이들이 선물처럼 나에게 왔다. 2학년 5반 영규, 성훈이, 용희, 소정이.

1년 학교 행사 중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체육대회를 앞두고 있었다. 아이들은 종합우승을 목표로 각 종목들의 연습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담임이 800m 릴레이 계주로 참가하면 가산점이 있다는 공지에 아이들은 같이 뛰자며 나를 조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달리기만 하면 꼴지를 했던 나는 반의 우승을 위해서라도 거절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계속해서 나를 설득했다. 육상이 학창시절 내내 나를 힘들게 했지만, 그때처럼 부담스럽고 괴로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두근두근 두려운 마음으로 며칠을 보내던 중 드디어 체육대회 당일이 되었다. 단거리를 잘 뛰는 용희와 소정은 100m에서의 당연한 개인 1등 상을 포기하고 계주를 지원했다. 힘이 좋아 단거리, 장거리 모두 자신 있던 영규는 188cm의 큰 키와 날렵함이 무기인 성훈에게 계주를 양보하고 담임이 운동장 반 바퀴를 도는 동안 옆에서 같이 뛰어 주기로 했다.

출발에서 선두를 확보한 소정에 이어 2등과의 격차를 더 넓히며 용희가 빠르게 나에게 오고 있었다. 정말 내 생애 그렇게 두근거리며 열심히 달려 본 적은 없으리라.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속도에 맞춰 옆을 지켜주던 영규가 계속 소리쳤다.

“괜찮아요 샘. 잘하고 계세요.” “샘, 넘어지지만 마세요.” “샘이 일등이에요. 걱정 말고 달리세요.” “샘, 얼마 안 남았어요. 조금만 힘내세요.”

대답도 못하고 숨 가쁘게 달렸다. 내 인생에서 처음 경험이었고 아마 마지막 경험일 것이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뛰어본 것. 그렇게 일등으로 뛰어본 것.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결승점에서 서로 얼싸안고 하이파이브를 하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해 본 것도 처음이었다. 내 것이었던 적 없는 기쁨을 맛본 것. 아이들이 준 뜻밖의 선물이었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19년차 교사가 되고 여느 해와 다름없이 졸업식 날 교무실에서 한 해를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문 밖에서 선생님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학생회장으로서 중3을 보낸 뒤 이번에 졸업을 하는 승윤이가 서 있었다. 승윤이에게 졸업을 축하한다고 말하니 승윤이도 그동안 감사했다는 인사를 건넸다.

“저 정말로 2학년 때가 너무 좋았어요. 제가 여태까지 학교 다니면서 제일 재미있었어요. 감사해요, 선생님.”

울먹거리며 말하는 승윤을 보고 있자니, 나도 함께 눈물이 났고 떠나보내는 아쉬움이 사무치게 밀려왔다. 우리는 서로를 안아주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해마다 포장지를 풀어 보면 매번 다른 선물의 아이들이 있다. 속상할 때도 있고, 걱정 되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선물처럼 나에게 주어지는 아이들에게 나도 선물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 선생님 같지 않았던 나를 선생님이고 싶게 해 준 아이들에게 평생 사랑을 갚아가는 마음으로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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