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도 무척 잘하고 덩치도 컸던 진호는 학급에서 리더십은 없었지만 영향력은 있었다. 당시 대령으로 직업 군인이던 아버지의 지역사회 인맥으로 진호의 어깨에는 항상 힘이 들어가 있었고, 비꼬는 말투와 잘난 척 하는 태도는 아이들이 보기나 교사들이 보기에도 달갑지 않았다.

어느 날, 진호가 쉬는 시간에 갑자기 용준이라는 아이에게 날라차기를 한 일이 생겼다.

용준은 또래에 비해 체격이 왜소한 아이였고, 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으며 어려서부터 공부를 봐주는 사람이 없었던 터라 성적도 나빴다. 하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착한 아이였다. 그 당시 교과 담당 선생님께 정황을 여쭤보니 용준이 자꾸 되물어서 대답을 해주고 있는데 진호가 시건방진 말투로 “선생님, 이제 진도 좀 나가시죠~”라고 말해 혼을 냈다고 한다. 진호는 용준 때문에 학급 전체가 보는 데서 선생님께 혼이 난 데 화가 나서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이 나가시는 것을 보자마자 용준을 발로 차버린 것이다.

그 동안에는 녀석이 성격이 안 좋다는 이유만으로 혼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는데 그 날은 ‘너 오늘 잘 만났다, 그동안 참았던 말 좀 다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폭력을 쓴 것에 대한 꾸지람으로 시작해서 동물성을 벗어나야 하는 인간성의 이야기로까지 말을 이어갔다. 그 당시에는 진호가 알아들은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시간이 흘러 6월 말, 학생들이 늦은 시간까지 자기 주도 학습을 할 때였다. 진호가 또다시 용준을 발로 차고 뺨까지 때리는 일을 직접 목격했다. 옆에서 깐죽대고 어처구니없는 질문으로 자기를 귀찮게 방해했다는 이유였다.갑자기 가슴 뿐 아니라 눈에서도 불이 나는 것 같은 열기에 휩싸여 진호에게 복도로 따라 나오라고 소리쳤다. 진호가 입을 꾹 다물고 밖으로 나왔다. 나는 진호에게 엎드려뻗쳐를 시킨 뒤 교실로 들어가 용준의 상태를 살폈다. 용준은 괜찮다고 말했다. 그 말에 더 화가 났다. 화내고 분노해도 되는 거라고 소리쳐 주고 싶었다.

복도에서 엎드려 벌 받고 있는 진호를 보니 화가 치밀어 올라 큰소리로 진호를 꾸짖기 시작했다. 그 때의 일은 나를 항상 부끄럽게 한다. 그 때의 그 장면을 또 다른 내가 지켜본 듯이 그림같이 내 머리에 선명하다.

“야, 이진호. 자세 똑바로 해. 힘 자랑 하던 놈 어디 갔어? 그 정도로 넘어가? 고작 그 정도에 넘어가는 놈이 너보다 좀 약하다고 발길질을 해? 네가 당하니까 어때? 선생님한테는 개길 수 없어 어쩔 수이 약자가 된 기분, 괜찮아?”

진호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대답 한마디 안했다. 그렇다고 반성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너 같은 놈 혼내면서 내 에너지를 쏟는 것도 한심해. 일어나 똑바로 서!”

그렇게 복도에 격리 시켜 벌을 세운 채 야간 자기 주도 학습 시간이 끝났다.

시간이 지나고도 괘씸한 마음은 여전했지만 진호와 그 사건에 대해 마무리를 해야 했기 때문에 진호를 교무실로 불렀다.

“반성은 좀 했어? 선생님이 왜 그렇게까지 널 심하게 혼냈는지 이유는 알아?”

진호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선생님 생각에 넌 능력도 많고 욕심도 있어서 명문대에 진학할 것 같아. 그렇기 때문에 생각을 더 건전하고 바르게 해야 한다면, 이해하겠니? 사회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건전하고 바른 사람이어야 이 사회가 제대로 이어지지.”

내 말이 겉도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마무리는 좋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차분히 이야기를 끝냈다.

시험이 끝나고, 여름방학도 끝나 2학기가 되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진호와는 공존 이상의 관계로 발전하지 않은 채 그 해를 마무리했다.

그 일은 나의 긴 교직경력 중 꽤 오래전 일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난 그 장면이 선명하다. 그리고 그 장면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덜컹한다. 누구에게도 털어 놓지 못했던 부끄러운 과거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한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도 한다. 폭력은 그것이 어떤 좋은 목적을 가지고 있던 폭력일 뿐이다. 나는 담임이라는 왕관을 쓰고 약자를 보호하겠다는 칼을 찬 채 또 다른 약자에게 또 다른 폭력을 휘둘렀을 뿐이다.

유시민 작가의 저서 <청춘의 독서>를 읽던 중 ‘32년 세월이 흐른 후’에 ‘다시 『죄와 벌』을 만났다’는 문장이 나의 가슴에 와서 맺힌다.

“아무리 선한 목적도 악한 수단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선한 목적’으로 당당하게 살인을 저지른 주인공이 그 후 끊임없이 정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어야 했던 것처럼 나 또한 끊임없이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끄러운 과거라 그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부끄러운 일을 했으니 계속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이 내 몫의 벌이라 생각한다. 나태해지지 않으려고 자주 다짐한다. 더욱이 민주시민을 길러야 하는 시화교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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