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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신

 

기억나지 않아요,
눈앞에 팔랑거리는 나비를 잡겠다고
고무신을 아차,
허공으로 날려버렸어요

저기 좀 봐
슈퍼타이 대신 설탕을 넣었어요
나를 녹여서 빨려고 해
어제와 똑같은 스웨터를 입게 될지 몰라

집 나간 병아리를 찾겠다고 거품을 손으로 찌른다
애타는 목소리를 휘젓는다
온몸에 멍이 든다 하얗게 하얗게 나를 잊는 병

둥둥거리며 세탁기 속에 삶아져 쉼 없이 돌아가다
쫑긋 귀를 세우면, 점점 표정이 굳어지지요

꼬들꼬들 잘 마른 빨래처럼 보송보송 웃으며
당신의 밤을 샤프란 샤프란 하고 싶어요

손으로 찍는 자국마다
설탕은 또 눈이 되어 내리고 있어요

 

프로필

김성신 : 전남 장흥, 광주대학원 박사과정 중,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 감상]

치매라는 병증은 삶을 송두리째 잃는 것이다. 치매에 걸린 본인의 삶도, 돌봐야 하는 가족의 삶도 치매로 인해 많은 것을 잃게 된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 보면 “누구세요?” 하면서 매일 새롭게 만나는 가족이 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사회문제, 병, 불편함, 이 모든 것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 당신이 살아온 생과 살아갈 생을 생각해 보자. 누구도 치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따듯한 시선으로 포근하게 보듬고 살자. 본문에 표현한 시인의 말. ‘하얗게 하얗게 나를 잊는 병’이라는 말이 온종일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김부회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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