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희야, 요즘 지각이 너무 많은 거 같은데, 일찍 오는게 어떨까?”

“선생님, 제가 요즘 얼마나 힘들게 학교에 다니는지 아세요? 너무 섭섭해요..”

 

철희는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학교에 부임해서 처음으로 만난 제자이다. 나의 첫해 제자인 철희. 철희는 고등학교 1학년까지 축구부 활동을 했었다. 시합 중에 무릎을 크게 다치면서 더 이상의 선수생활을 할 수 없게 되어 학업에 열심인 녀석이었다. 녀석은 쉬는 시간마다 옆반 친구에게 영어를 배우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 수업시간에도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 주었다. 어느날 그런 녀석이 내게 섭섭하다며 눈물을 보였다.

오후에 철희를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철희는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학교등교를 준비한다고 했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학교에 와야 하는데, 김포 시내에서 학교로 오는 버스 시간이 일정치 않아 조금씩 지각을 하는 것이라 했다. 지금은 9시 등교를 시행하고 있지만, 당시 우리학교는 8시까지 등교를 해야 했다.

오랫동안 운동 선수생활을 했지만 매일 새벽 일찍 일어나 학교에 오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방과 후 자기 주도학습을 하고,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옆반 친구의 도움을 받아 부족한 실력을 키우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아이에게 더욱 일찍 오기를 종용하는 담임이 얼마나 미웠을까? 아무리 초임교사라고 하지만 그리도 아이들의 마음을 모를까? 내가 참 미웠고, 철희에게 많이 미안했다. 철희와 상담을 하면서 철희의 장래 희망을 물었다.

“철희야, 넌 이제 무엇을 하고 싶어?”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그림을 그려보고 싶어요.” “너 그림에 재주가 있어? 한번 보여줄 수 있어?” “아뇨, 그림 못그려요. 그래서 한 번 배워보고 싶어요. 그렇지 않아도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싶었어요. 선생님 저 직업반으로 옮길 수 있을까요?” “직업반으로? 왜?” “직업반으로 옮겨서 방과 후에는 학원을 다니고 싶어요. 그림도 그리고, 영어 공부도 제대로 하고 싶어요. 지금 우리반에선 제가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질문을 많이 하는 것도, 야자에 빠지는 것도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서 조심스러워요”“...미안하다. 철희야! 네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고민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네 말대로 직업반으로 옮겨서 미술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 수 있도록 선생님이 한번 알아볼게” 철희와 상담을 마친 후 바로 2학년 부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을 찾아가 이과반에서 직업반으로 학급을 옮기는 것이 가능한지 알아보고 조치를 취하였다. 그래서 철희는 우리 학급에서 1학기를 마치고 2학기부터는 직업반에서 학교생활을 하게 되었다.

철희는 3학년이 되었다. 인천에서 통학하는 것에 어려움을 많이 겪어 미술학원 근처에 고시원을 얻어서 생활한다고 했다. 학기 초에 나를 보더니 멀리서 달려오며 인사를 건넨다. “선생님, 저 오늘 코피가 났어요” “야 임마! 코피 나는 게 뭐가 좋은 일이라고. 많이 피곤해?” “저 운동하던 때도 코피 난 적이 없어요. 미술학원에 갔다가 영어공부를 아주 열심히 하고 있어요” “아침에 세수하다가 코피가 났는데,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철희 너 정말 열심히 하고 있구나.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거야! 힘내렴”

하지만 그 해, 철희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철희의 말로는 그림 실력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고 했다. 철희는 재수를 선택했고, 아예 미술학원 근처에서 자취를 하며 대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해 체육대회 날, 철희가 검은색 통을 등에 매달고 왔다. 나를 보자마자 통을 꺼내 종이를 펼쳐 보여준다. 그림이다. 미술실에서 많이 보던 조각상의 얼굴이다.

“선생님, 이거 제가 그린 그림이에요”“이게 누구지? 미술실에서 많이 본 것 같은데”“아그립바에요. 소묘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그림인데, 오늘 학원에서 처음으로 칭찬을 들었어요”“벌써 3년째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칭찬을 들은 건 오늘이 처음이에요. 너무 기분이 좋아서 선생님 보여드리려고 왔어요”“자식, 정말 잘 그렸네. 그림을 잘 모르는 내가 봐도 너무 멋지게 그렸네”

그날 우리반은 체육대회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많이 기뻤다. 하지만 철희를 만나고, 철희의 환한 얼굴을 보게 된 것이 더욱 기뻤다. 드디어 자신이 선택한 일에서 인정을 받게 되었다며,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와준 철희가 고마웠다.

그림을 배우며 대학 진학을 준비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는 철희와 다시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해 겨울, 수능이 끝나고 다른 친구를 통해 철희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 대학교 디자인과에 합격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그 후로 오랫동안 철희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다시 연락이 닿게 된 건 당시 유행하던 ‘싸이월드’ 덕분이었다. 싸이월드를 통해 한 친구가 철희와 연락이 닿았고, 그것을 핑계삼아 학급회장이었던 정수가 반창회를 열었다.

내가 철희를 비롯한 첫해 제자들을 만났던 나이가 27세였다. 우리의 첫 반창회는 녀석들이 27세 되던 해였다. 27세의 녀석은 많이 성장해 있었다. 대학 입학 후 디자인 공부를 위해 같은 과 동기와 유학을 다녀왔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과 연락이 잘 닿지 않았던 것이었다. 지금 철희는 디자인 회사에 취업을 해서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무엇을 하던 모든 것이 늦지 않았다는 것을 직접 깨우쳐 준 철희. 철희와의 만남은 내가 학교에서 만나는 우리 아이들의 현재와 미래를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끌어준 소중한 만남이었다.

 

* 출처 - 조이오투, 『아프게 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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