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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연중기획> 한강하구 접경지역 마을이야기(5) - 보구곶리
류지만 
前 김포문화원장

보구곶리

① 땅이름 :

원래 보구곶리의 땅이름은 보구곶면에서 시작되었다. 1914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보구곶리가되어 월곶면에 소속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보구곶리는 문수산의 북쪽줄기가 조강 쪽으로 쭉 길게 뻗어나간 서편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유도 쪽으로 뻗어나간 산줄기의 형상이 ‘보습’처럼 생겼기 때문에‘ 봇습곶이’‘ 보수곶이’‘보수구지’라는 땅이름이 생겼다
한자문화가 들어오면서 한자로 땅이름을 표기하면서 ‘浦口串里’로 되었다가 ‘甫口串里’로 변했다. 한자로‘甫’는 크다는 뜻과 시작하다(始)의 뜻이 있고‘ 口’는 어귀구 이므로 큰 강의어귀 또는 강이 시작되는 어귀로 의미가 같다.
‘보습곶이’는 자연적인 지형의 생김새대로 생겨난 우리말 땅이름이고 한자지명인 ‘甫口串’은 조강, 서해바다, 땅의 생김새를 모두 아우른 땅이름이라 할 수 있다. 서해바다인 염하와 큰강인 ‘조강의 어귀에 있는 마을’이라는 자랑할 만한 땅이름이다.

② 유도(留島) :

조강의 경계선에 있는 육지에서500m 떨어진 섬이다.
옛날, 홍수에 떠내려 오다가 이곳에 머무른 섬이라고 하여‘ 머물은 섬’‘머무루섬’‘ 머머리섬’‘ 머머루섬’이라 불어오다가 한자로 지명을 표기하면서 머물‘유’자 유도가 되었다. 장마때 홍수가지면 상류에 서식하는 뱀들이 떠내려 오다가 기어올라 뱀이 많았다. 이 뱀들을 먹잇감으로 하는 황새,왜가리, 백로 등이 모어 들어‘ 학섬‘이라 부르기도 했고 ’뱀섬(巳島‘) 라 부르기도 했다.
지금은 저어새 서식지로 한강하구생태계의 보고다. 유도는 마치 개가 누어있는 형국의 지형을이루고 있고 동굴이 있다. 이 동굴에서 이무기가 용이되어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고, 역술가들은 섬이지만 명당의 형국과 형세를 갖추었다고 이야기한다.
1996년 7월 경 홍수로 북한에서 유도로 떠내려 온 소를 1997년 1월 17일해병대의 구출작전으로 구조하였고, 김포시가 인수하여 ‘평화의 소’로 명명하여 평화문화도시의 상징이 되었다. 그 후 김포시 곳곳에 평화의 소 동상이 세워졌다. 그 소는 세상을 떠난지 오래지만 그 후손들이 계속 대를 이어 생존하고 있다.

③ 선거인(先居人)과 인구

보구곶리의 선거인(先居人)으로는 도씨(陶氏)와 송씨(宋氏)가 살았으며 현재는 창령(昌寧) 성씨(成氏)가 세거해오고 있다.
260여 년 전 1760년(영조 36;庚辰) 보구곶마을의 가구수는 193호로 주민은 530명으로 남자가 293명이고 여자는 237명이었다. 1789년(정조 13;己酉)의 가구 수는 165호로 28호가 감소하였으나 주민은 633명으로 103명이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보다 인구가 많았다.
 

김포신문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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