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은

 

백상웅

 

파 한 단을 사와 노끈도 끊지 않고 뿌리만 슬쩍 화분에 묻어두었다.

저녁마다 한 쪽씩 뽑아 다듬었다.

 

야근해서 하루 대충 때우고,

이별해서 하룻저녁 굶고,

귀찮아서 이번 한 번만 시켜 먹고,

피곤해서 그대로 잠들고,

 

어쩌다 보니 파꽃이 피었다.

발만 걸쳐 봤는데 잔뿌리가 얽히고설키고 속살에 눈 매운 무늬가 번졌다.

 

외로운 날엔 가장 길쭉한 저녁을 한 쪽씩 뽑아 어슷 썰었다.

뿌리부터 이파리까지.

가득 찬 지루한 곡선을 텅 비울 때까지.

 

프로필
백상웅 : 전남 여수, 우석대 문창과, 창비 신인상, 시집[거인을 보았다] 외

 

시 감상

파를 뿌리째 묻어두면 쉽게 시들지 않는다고 한다. 어느 한 때, 절망의 나날이든 열정의 나날이든 발밑에서 파가 자랄 때가 있다. 땅 속도 아니고 그렇다고 씨앗을 뿌려둔 것도 아닌데 몸에서 파꽃이 필 때가 있다. 줄기를 숭숭 썰어 펄펄 끓는 찌개에 넣으면 속이 시원해진다. 그것도 아니면 송두리째 김치를 담그기도 한다. 파김치라고 한다. 제법 맛이 들대로 든 파김치에서도 싹이 나오고 시퍼런 줄기가 솟아오르기도 한다. 우린 그것을 희망이라고 부른다. 파김치가 되었을 때 햇살 쪽으로 슬쩍 발을 걸쳐보자. 대파 한 다발이 쑥 자랄 것이다.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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