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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감상] 비의 목록

비의 목록

 

김희업

 

 

손바닥에 닿으면 부러지는 연약한 비

비가 거리의 목록에서 노점을 지웠다 오늘은

가난하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우산을 펴자 비가 우산 위로 사납게 달려들었다

우산은 우산 크기만큼만 비를 가려주었다

온다는 소리 없이 집집마다 비가 다녀갔다

섭섭하지만 비를 뒤쫓아갈 필요가 없었다

훗날을 기약하며 보내주기로 했다

비를 모금함 속에 모아두는 엉뚱한 사람은 없을 테니까

사람을 불러 모으는 재주를 가진 노점이 사라진 사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비에 스며들었는지

한산한 거리가 비로 시끌벅적했다

비에 쫓겨난 봄꽃은 어디서 보상받을는지

생계가 막막해진 봄꽃이

뿔뿔이 자취를 감추었다

손바닥에 닿으면 부러지는 연약한 비에도

바퀴의 노동은 멈추지 않고, 내일도 모르고 앞만 향해 자꾸

달려간다 이런 날, 바퀴도 없이 미끄러지는 사람이 꼭 있더라

저만치 자신을 내팽개치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비가 거리의 목록에서 이제 웃음조차 지우려 한다

오늘은 비의 목록에 따뜻한 위로가 추가되어야 할 것 같다

 

프로필

김희업 : 건국대 국문과, 서울예대 문창과, 현대문학 등단, 시집[비의 목록]외 다수

 

시 감상

 

겨울답지 않게 비가 많이 내렸다. 계절마다 내리는 비는 계절의 색을 짙게 하거나 혹은 계절을 탈색시키거나, 당신은 어느 계절의 비를 좋아하는지? 쏟아붓는 여름 비, 우산 속 울음을 감추지 못하게 만드는 가을비, 따뜻한 봄 비? 아니면 왠지 남의 옷을 걸친 듯 겨울 속 봄 비? 비의 목록을 만들어 보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비에 스며들었고 얼마나 많은 것들을 비에 씻겨 보냈는지? 보낸 것들의 목록을 만들어 보자. 잠시 비가 되어보자. [글/김부회 시인, 평론가]

김포신문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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