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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어린이)신문 필요하다(미래교육의 시급성)
박태운 발행인

김포신문 상생시리즈
Ⅰ. 초저출산 문제제기 
Ⅱ. 지구온난화 심각성 부각
Ⅲ. 소상공인 어떻게 활력을 키울것인가 
Ⅳ. 어린이신문 필요하다

미국 콜럼비아대 제프리 삭스 교수는 “한국 경제발전은 전례가 없는 성과이며, 교육이야말로 경제발전의 연료 역할을 했다”라고 한국 교육의 성공을 높게 평가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한국에서는 교사가 국가 건설자”라는 말과 상통한다.

오세정 서울대 총장의 최근 미래교육에 대한 의견을 피력해보겠다. 대한민국의 70년대 공대 확장정책이 80년대 중공업을 발전시켰고, 80년대 대학원 확장정책의 고급 연구인력이 90년대 IT, ICT를 발전시키는 동력이 되었고, 90년대의 질적 향상으로 축적된 연구인력이 작금의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이바지하고 있다면, 그와 유사한 관점에서 보다 혁신적인 대한민국의 교육정책이 미래대안으로 필요함을 역설한다.

지금의 시대는 “학생들은 공부가 재미없고 지겹다”, “열심히 공부해도 취직이 안 되는 공부”, “사교육비가 과중하다” 정작 인력을 고용할 기업들은 “대학을 나와도 쓸모 있는 인재가 없어서 처음부터 다시 교육해야 한다” 교수들은 “학생들 수준이 점점 떨어지고 전공보다 취직에 집중한다”며 배우는 학생이나 학부모, 기업, 교수가 모두 불만이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의 형세이니 우리나라 교육의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는데 늦은 감이 있다. 더구나 최근 시대적 배경은 미래의 4차 산업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정말로 상상하기도 벅찰 만큼 세상을 뒤흔들어 천지개벽할 만한 세상이 도래한다. 이지성 작가는 <에이트>라는 책의 서문에서 “당신에게 묻는다”라는 질문을 한다.

대형 선박에 승선하여 바다 한가운데서 배에 불이 났다. 1988년 북해의 시추선을 이야기하고 있다. 계속 갑판에 남을 것인가? 생존이 보장되지 않은 북해의 차가운 바다에 뛰어들 것인가? 과감히 뛰어든 사람은 구조에 의해 생존한다. 작가는 4차 혁명의 미래시대를 불타는 시추선으로 표현하고 있다. 미래를 대비하는 결단을 할 것인가? 안주하고 불에 타 죽을 것인가? 의 선택을 강력히 강요한다.

컴퓨터가 생겨난 시점을 2차 대전 종전쯤으로 볼 때 70년의 역사에 불과하다. 50년대에서 70년대의 컴퓨터 능력은 지금과 비교해 현저히 조악스럽다. 80년대 후 서서히 능력을 갖추고 2000년대에 들어서서 급격한 상승 그래프로 변화하더니 지금에는 슈퍼컴퓨터를 넘어 팬텀컴퓨터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인류 500만 년의 기간 동안 인류가 잠 안 자고 연산해내는 능력이 팬텀컴퓨터 1초의 연산능력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초고도화의 사회초입부에서 아직 문턱도 넘지 않은 상황이다. 인공지능하면 떠오르는 ‘알파고’도 딥러닝으로 스스로 학습하는 새로 나온 ‘알파고ZERO’에게는 천양지차의 격차가 있다.

불과 3~4년의 시간에 새로운 인공지능들이 탄생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향후는 더 빠른 시간에 더 고도화한 인공지능들이 속속 선보일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이지성 작가는 향후 인공지능의 IQ가 ‘1만’ 일 때를 가상하고 있다. 인간의 지능이 100 수준으로 상정해볼 때 상상불허의 가공할 지능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IQ 100과 10,000의 차이는 무엇일까? 천재 아인슈타인의 지능을 170으로만 비교해봐도 상상속의 IQ다.

인간 500만 년 역사와 달리 예측불가성 베일에 싸인 컴퓨터와 AI가 만들어낼 미래에 우리 아이들의 일자리는 무엇일까? 지금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근로자로서의 지위가 판이하게 바꿔져 사라지는 일자리와 새로이 생성될 일자리 등을 예상하고 있지만 과연 우리가 예측하는 그 정도 수준의 변화일까? 에 대해서는 미래학자 누구도 답변하지 못한다. 오히려 더 크고 깊은 방대한 변화의 세상이 올 것이고 그 주체가 인간이어야 한다는 사실만 강조하고 있다.

컴퓨터, AI, 로봇과 경쟁할 인간은 지금과는 달라야 할 것이다. 이미 첨단 과학자들은 인간의 뇌와 신체에 초인간의 접목을 구상하고 있다. 이러한 4차 산업의 세계에 필요한 기량 있는 인재를 키우는 과제는 어찌 보면 절체절명의 순간이 앞으로 10년, 20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100년의 교육이 그동안 암기식, 주입식의 일방통행적 교육이었다면 향후의 교육은 예측 불가능한 미래사회에서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거냐가 주관심사가 될 것이다.

규칙과 명령이 횡횡하는 학교는 보다 새로운 가치를 탄생시키며 학교의 실질적 주인인 학생과 학생을 보조하는 교사들의 협력과 공감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반복적으로 암기하고 복습하는 교육 중 대다수는 잊어버려도 인생에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 그걸 왜 구태여 외우게 하고 실력으로 평가하는 시험을 치르게 하나. 이미 유럽에서도 가까운 일본에서도 교과서 없는 교육이 시작되었고 우리도 도입 초반부에 있다.

과학에 관한 흥미, 과학가치에 대한
인식, 자신감, 모두 전 세계 최하위권
학교는 창의성을 살려주고 의사소통능력과 비판적 사고능력, 협업능력들에 대해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교육으로 미래의 새로운 잣대에 유연할 가치창출에 주력하고 있다. 서울대 오세정 총장이 제기하는 IB(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 교육도 미래교육의 표준을 유네스코 산하 비영리단체인 IBO가 만들어 세계에 산재한 국제학교나 IB도입 학교들이 필요한 교육표준을 만들어 공급하고 있다.

최근 IB교육을 과감히 도입한 대구의 어떤 초등학교와 중학교도 지난해 2학기부터 시작했지만 전교조의 반대가 있는 것을 보면 우리 아이들이 미래에 무엇을 해서 먹고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개념과 기계들과의 협조적 소통에 필요한 인간의 도덕성과 기본적 인성을 잘 살려주는 문제제기에 아직도 일부 교사들의 방어적 기제가 작용하는 것 같다.

유럽의 어느 교사가 증언하는 것처럼 학생들에게 그림을 그리라고 하고 ‘꽃’이라는 것을 그리라고 하여 모든 학생들이 꽃을 그려 제출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배운 학생이 전학을 와서 교사가 그림을 그리라고 하니 딱히 떠오르는 주제가 없어 결국 전에 다녔던 학교에서 그린 꽃그림을 그려냈다고 한다. 한 가지 질문에 백 가지로 답할 수 있는 것처럼 아이들이 어떤 그림을 그릴 지를 선택해주는 교육이 아이의 자율성과 창조적 자유로움이 사라지는 하나의 예다.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까지 아이들이 부모에게 하는 고단한 질문들, 엄마 저게 뭐야? 아빠 저게 뭐야? 시시때때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똑같은 것을 열 번도 더 물어본다.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사물들은 모두 신기할 뿐이다. 그런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언제쯤부터 질문이 사라진다. 질문이 사라진 아이는 차츰 교육에 길들여지고 잊어버려도 되는 똑떨어지는 교육에 파묻힌다. “적게 가르치면 오래간다”는 어느 교사의 말이 신선하다. 교육현장의 학생과 교사는 중심축이고 교사들이 먼저 변해야 교육현장의 혁신이 일어난다. 장학의 시대는 종말을 고할 때가 되었고 교사는 학생들이 하는 과제들을 뒤에서 지원하는 가이드 역할로 족한 시대가 되었다.

노는 것과 즐기는 것을 알게 하고 과학·기술·공학·예술·수학의 교육 분야에서 서로 융합해서 생각하고 문제제기하고 결론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중시하는 교육으로 혁신하여 과거에 배웠던 주입식 교육이 더 이상 학생들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유념해야 한다.

청소년 신문이 밝혀낼 김포교육
급하게 변화하는 시대에 김포의 교육현장은 어떠한지, 미래로 향한 교육은 어느 곳에 존재하는지를 김포신문이 열심히 찾아가겠다. 미래의 언어인 코딩이 난무할 논리와 창의력의 원천 코딩세계, 학교도 대학을 보내기 위한 과정보다는 자신들이 닥칠 미래에 대비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다.

어릴 적부터 디지털기기에 둘러싸여 성장한 디지털 네이티브들에게 필요한 건 스마트폰 한 개와 태블릿 PC 한 개면 족하다. IT세계 최강국의 이점도 십분 활용하면 다른 선진국의 앞선 교육제도를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다. 이미 어린아이들이 만들어내는 신제품이나 개발되는 제품의 능력은 상상력이 끝이 없다는 걸 보여준다.

김포신문은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균형자, 감시자, 지지자 등 다양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학교마다 교육의 차이가 어떻게 다른지? 학교의 주인이 학생인지 교사인지, 어느 학교가 퍼스트 무버인지를 말하면서 학생과 교사, 학부모단체가 함께 쓰고 읽는 청소년 신문을 추가할 계획이다. 아이 한 명 한 명마다 귀중한 인격체로서 존중받는 교육의 현장을 취재하겠다.

토드 로즈의 ‘평균의 종말’과 같이 평균이 없어지는, 평균을 보고 모든 걸 맞추는 교육의 종말을 기대한다. 우선은 선생님들의 혁신적 변화다. 변화는 두렵지만 용기가 있으면 되고 교장선생님들은 변화를 거부하며 딴지를 거는 교사들을 잘 설득해야 모두가 동참하는 미래교육에 성공할 수 있다.

박태운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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