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 열아흐레

 

최영규

 

마을 앞 저수지 속 깊이

파랗게 얼어붙은 하늘

 

그 하늘엔 까마득히

늘어진 연줄 같은

비행운(飛行雲)을 꼬리에 달고

은박지 조각처럼 반짝이는

비행기 하나

끝도 없어 보이는 그 얼음벌판을 내달리는

 

아이들이 내뿜는 입김은

하얀 토막구름이 되어 흩어지고

댓돌 아래

질퍽이던 진흙 발자국 가운데

녹아 고인 물에도

투명한 겨울하늘이 담겨 있다

그렇게 마당에 가득한 하늘빛

 

겨울 햇살들이

꼬들꼬들

무말랭이처럼 말라가는

섣달 열아흐렛날

오후.

 

프로필

최영규 : 강원 강릉,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나를 오른다]외 다수

 

시 감상

이맘때면 시린 하늘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린다. 얼레에 감긴 실을 풀어 날리던 하늘, 라이너스의 [연]이라는 노래, 논바닥에 물을 대 꽁꽁 얼린 빙판에서 썰매를 지치다 보면, ‘00야 밥 먹어라!’ 어머니 부르는 소리, 뒤란의 소죽 끓이는 냄새, 황소울음 소리, 뭉게구름 같은 저녁밥 짓는 굴뚝, 지금은 이름도 아득한 설빔, 모두 투명한 하늘에 회상의 단편 크로키로 지나간다. 되돌아 갈 수 없는 그 먼먼 유년의 한때가 기억을 서성거린다. 섣달이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이다. 가끔 뜨거운 커피 한 잔속에 달디 단 추억을 넣고 후후 불어가며 마셔보자. 가슴이 더워진다.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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