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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잔소리 철학> 사랑의 성숙
신상형 
안동대학교 명예교수

오늘날 한국사회는 갈라져 싸우고 있다. 다양한 의견이 자연스럽게 표출되고 있다는 견해는 많은 친구들의 어색한 대화에서 위증임이 드러난다. 문제는 이런 어색함이 이전에는 부끄러워 말싸움을 멈추게 한 척도로서 작동했다면, 이제는 대화 상대와 싸울 발단이 된다는 현실이다. 오랜 친구가 의리를 배척하면서까지 자기 입장을 관철시키려는 모임은 분열하게 되어있다. 이 분열은 상대방의 약점을 잡아 인격을 모독했으므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싸움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싸움의 발단은 상대방을 향한 사랑이었다. 정치와 종교는 특성상 동료집단화를 지향하고, 내 편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애정을 통한 집단화가 정치와 종교 대화의 출발점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서로를 향해 나아가는 남녀관계의 결혼과도 같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의 현재 분열상은 사랑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면 해결될 실마리가 풀릴 형국이다.

셰익스피어에 따르면,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 가장 싱싱하게, 그리고 변함없이 사용해온 낱말이 사랑이다. 그러나 사랑은 다양한 의미로 해석된다. 이런 다양성을 잘 안 그리스 사람들은 일찍부터 사랑을 여러 단어로 구분했다. 먼저, 쾌감을 추구하는 욕구로서의 사랑 에피투미아epitumia가 있다. 이것은 자기본위의 사랑이다. 이를테면 미숙한 어린 아이들이 보이는 소유욕으로서의 애정이다. 어린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을 가지려고 부모나 친지들을 졸라댄다. 그것만을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부모와 친지들의 형편이나 대상의 값어치는 무시된다. 심지어 그 대상이 진짜로 있는 것인지조차도 관심 밖이다. 달을 따 달라거나 우주선을 가져오라는 등의 무리도 서슴지 않는다.

그 다음으로 낭만적인 열애로서의 에로스eros가 있다. 남녀 간의 달콤한 사랑이다. 에로스의 연인들은 현실의 모든 조건도 무시한다. 열렬한 둘 사이를 방해하는 모든 것은 배척할 대상으로 전락한다. 자신들을 지지하고 축복하는 자들만이 착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이다. 이 열렬한 사랑은 청소년이나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뤄진다. 심리적 청소년인 자들만이 에로스의 사랑을 할 수 있다. 이들에게는 곧 독이 될 성배도 축복의 잔인 것이다.

건강한 친구 간에 이뤄지는 사랑으로 필로스philos가 있다. 형제애로 불리는 필로스는 모든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필로스는 배타성이 없다. 필로스의 연인은 갑을 사랑할 수도 있고, 을을 사랑할 수도 있고, 갑과 을을 동시에 사랑할 수도 있다. 사랑의 정도도 세기와 엷기가 다양하고 다층적이다. 그러기에 열린 사랑으로 상대방을 두루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관용을 가진 사랑의 수행자가 된다. 닫힌 사랑은 자기가 중심이 되어 주도적 역할을 하고 또 중심에 서서 관심을 받으려는 욕심만을 가진다. 그러나 열린 사랑은 주역과 조역을 주장하지 않고, 자기의 관심인 사랑이 성취되기만 하면 되는 바람직한 사랑이다. 열린 사랑의 욕심은 그래서 고상함을 유지한다. 대표적으로 지식과 지혜를 추구하는 욕구하는 사랑이다. 철학philosophy이라는 말은 여기에서 나왔다. 그것은 지혜sophia 사랑philos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자식 사랑 혹은 하나님의 인간 사랑이라고 부르는 아가페agape가 있다. 무조건적 사랑이다. 자기본위의 사랑epitumia과 대척점에 서있는 사랑으로, 여기에는 사랑의 조건이 없다. 그렇다고 그것은 맹목적인 사랑은 아니다. 단 한 가지의 목적 곧 대상인 한 인간이 사랑을 알도록 자라기를 원하는 목적을 은연 중 갖고, 자기를 헌신하는 것이 아가페 사랑의 작동원리이다. 아가페는 사람이 이 사랑을 받아서 깨달을 때만 비로소 그 사랑의 존재를 의식하게 되는 고도의 사랑이다. 예컨대 시집간 딸이 자기가 아이를 낳아 그를 향해 사랑을 쏟는 것이 얼마나 무한한 것인지를 이해할 때 비로소 친정어머니의 사랑agape을 이해하게 된다.

이렇듯 사랑의 특징은 다르기도 하고, 성장의 등급을 갖기도 하는 것 같다. 마치 한 사람이 인격의 성장을 따라 그 안목의 등급을 달리하듯. 이제 우리는 자기본위의 갈등적 사랑을 타자와 동행하는 포용적 사랑으로 성숙시킬 필요가 있다. 에피투미아와 에로스의 사랑을 벗어나 필로스와 아가페의 사랑으로 성장해 보자. 앞에 있는 친구의 새로운 어색함이 친구의 마음에 박혀있는 익숙함으로 돌아올 것이다. 2020년을 새로운 사랑문화로 만들어보자.

김포신문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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