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친구였지만 오십 나이에는 신분이 다릅니다. 그럼에도 양성지 영감에게 존댓말을 안 쓰는 것으로 보아 둘 사이는 짙은 우정이 있어 보입니다.

“청지기 말로는 눌재가 태어난 청풍으로 가서 조사한다는데 사실입니까?”

“네, 이 집안에 대대로 봉사하던 할멈에게서 들었습니다. 시간 되면 찾아가 볼까 합니다.”

원통이 토정선생 방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응시하더니 나직하게 말했습니다.

“가봐야 소용없을 것입니다.”

“네에? 무슨 말씀이신지. 눌재 영감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청지기는 분명 말했습니다. 양성지 영감이 어려서 새를 쫓아 산속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양성지가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자 하인들을 시켜 찾아 나섰다고 합니다. 원통 훈장도 친구가 걱정이 되어 따라나섰습니다. 둘이서 자주 갔던 곳을 찾아 여기저기 가다가 마침내 산으로 들어간 흔적을 발견하고 횃불을 만들어 들어갔습니다.

“청풍은 높고 깊은 산이 많습니다. 거기서 길을 잃으면 밤 추위에 얼어 죽거나 맹수의 밥이 되기 십상이지요. 그러니 걱정을 한 하겠습니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도 예전에 질러가겠다고 산길을 갔다가 길을 잃어 하마터면 죽을 뻔했습니다. 다행히 동굴을 발견하고 들어가 추위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 산에 자주 가서 나무를 하는 나무꾼이 앞장섰는데 그 산에는 맹수나 밤 추위에 피할 동굴이 없다고 했습니다.”

원통은 그 당시에 있었던 일을 마치 눈앞에서 벌어진 일처럼 상세하게 묘사했습니다. 할멈의 말대로 소년 양성지는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옷을 더럽혀져 있었고 열병으로 드러누웠습니다. 며칠 뒤에 겨우 입을 열었는데 그때부터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할멈 말로는 뭔가 보고 놀란 것 같다는데. 혹시 까닭을 아시오?”

“그것은 추측일 뿐이오.”

원통은 단정적으로 말했습니다. 양성지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니 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확실한 것은 양성지 영감이 그 후로 말더듬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토정 선생님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인기척을 내고 방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호롱불 밑에서 책을 읽고 계시던 선생은 책을 덮고서 우리를 맞았습니다.

“늦은 밤에 찾아뵈어서 죄송합니다.”

내가 먼저 이렇게 입을 연 후에 원통 훈장을 소개했습니다. 표정을 보니 우리가 찾아올 것을 미리 아신 듯했습니다. 천하의 기인 토정선생이 무얼 모르겠습니까. 나와 원통 훈장이 번갈아가며 그날 양성지가 산속으로 들어가서 무엇을 보았는지 추측했습니다. 토정 선생은 눈을 감고 우리말을 듣고 있다가 번쩍 눈을 뜨고 외쳤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눌재 영감은 스스로 말더듬이가 된 거야.”

네에? 우리 둘은 놀라 서로 합창했습니다. 멀쩡하게 말하던 사람이 말더듬이를 자청할리가 없지 않습니까.

“눌재 영감이 이곳에 오면 물어보라고. 말더듬이가 안 되었다면 그 사람은 벌써 죽은 목숨이야. 계유정난도 사육신의 난도 피하지 못했을 거야.”

토정선생은 양성지가 말을 더듬었기에 같은 벼슬아치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최항 같은 사람들과만 친교를 나누었다고 했습니다. 하긴 말을 더듬는 사람은 벙어리와 마찬가지니 사람을 사귀지 못했을 것입니다. 양성지가 있던 부서의 대부분 사람들이 연루되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모든 위기가 지나갔으니 고칠 수 있어. 그래서 우리가 온 것이고.”

최영찬 소설가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