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형
(안동대학교 명예교수)
영국 셰필드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영국 옥스포드 대학교
철학과 방문교수
안동대학교 인문대학학장
역임
안동대학교 명예교수(현재)

여러분 반갑습니다. 새해에 좋은 꿈꾸시고 복 많이 받으십시오.

저는 지방대학에서 철학교수로 있다가 정년퇴직을 하고 김포로 이주를 한 노학자입니다. 이곳에 온 지는 겨우 1년 남짓 되었습니다. 최근에 가까운 친구의 소개로 <김포신문>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문사를 방문하여 대화 중 저의 자그마한 교직 경험이 지역사회를 섬길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겨 이런 코너를 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부담이 큽니다. 흔히 철학은 만학의 여왕으로 세계와 시대를 밝힐 거대한 지식체계라고 하니, 혹여 제게 그런 논의를 기대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위대한 일을 논할 위인이 못됩니다. 또 능력도 없습니다. 그저 소소한 이야기들을 통해 일상 속에서 합리적인 사고와 상식적 태도가 뭔가를 서로 나눌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램입니다.

우선 오늘은 ‘잔소리 철학’이라는 코너의 저급한 작명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큰소리로 된 주장을 않겠다는 뜻입니다. 요즈음 주변에는 큰 소리들이 많습니다. 큰 소리는 대체로 정치적이고 과장된 소리들입니다. 정치적인 소리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패를 나누고 자기의 것을 강요하는 화자의 요구가 들어 있습니다. 통상 큰 소리는 거의 “...이어야 한다.”는 당위의 형식을 띠고, 획일적인 결단을 압박합니다. 반면에 잔소리는 사태를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각자의 것을 존중하면서 사람들을 모으는 순기능이 있습니다.

잔소리는 말 그대로 잔잔한 소리입니다. 잔소리는 다른 잔소리를 불러옵니다. 대화를 트는 말하기가 잔소리입니다. 큰 소리는 한 번 나오면 대화가 끊기는 소리입니다. 잔소리꾼은 절대적인 진리나 원칙을 선언하기보다 자기의 소견이 틀릴 수도 있는 견해라고 인정하는 사람이죠. 사람들은 잔소리를 통해서 자기의 의견을 말하면서 상대방의 입장을 바꾸기를 기대합니다. 왜냐하면 잔소리는 상대방의 마음을 열게 하고 자기의 생각을 돌아보게 만들거든요.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잔소리를 통해 우리는 증오보다는 서로를 향해 신뢰를 쌓아갑니다.

잔소리에는 애정이 묻어 있습니다. 부부는 칭찬으로 고운정도 쌓지만 잔소리로 미운정도 채워갑니다. 얼룩덜룩한 남편도 아내의 살뜰한 잔소리를 통해 튼실한 가정을 만들어갑니다. 남 보기에 오글거리는 닭살부부는 대체로 남과 어울리는 데는 코드를 못 맞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에 서로 잔소리가 많은 부부는 오히려 남과 잘 어울리는 건강성을 갖고 있습니다. 잔소리를 통해 객관적 눈치를 획득하기 때문이지요. 이것이 잔소리의 위력입니다. 철학의 역할을 소크라테스는 소잔등의 ‘등에’라고 했습니다. 등에는 쇠파리입니다. 쇠파리는 예리한 빨대 입으로 쇠가죽을 뚫고 피를 빨기 때문에 짜증나는 존재이지만 소를 잠에서 깨어나 꼬리를 치며 풀을 뜯어 건강케 하는 필요악입니다. 이런 등에의 역할이 사람에게는 잔소리입니다.

잔소리는 본질상 핵심적 역할입니다. 거대한 나무는 큰 가지나 뿌리를 통해 생명을 지탱하지 않습니다. 지지하는 역할만을 담당하는 큰 가지나 뿌리는 광합성 활동이나 영양의 섭취로 나무를 생존케 하는 잔가지와 잔뿌리와는 비교되지 않습니다. 인간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대화나 장바구니 물가가 민주주의나 국가경제를 사실상 만들어갑니다. 풀뿌리민주주의라는 말이 상징하듯, 개인 간의 소통이 통제된 사회는 독재국가이고, 장바구니가 빈약한 나라는 경제가 실패한 국가입니다. 잔소리가 많은 사회, 잔소리를 중시하는 국가는 성공한 민주사회의 상징입니다. 선진사회의 의식과 가치는 잔소리가 만들어냅니다.

잔소리는 구체적 삶의 행동으로 실천을 이끌어 내는 정직한 의사표현 방법입니다. 큰소리는 대체로 공허한 이념을 모호하게 표현한다면, 잔소리는 일상생활의 구체적 동작들을 지적합니다. 그래서 잔소리를 폄훼해서는 안 됩니다. 거대한 가치와 이념도 자잘한 행동을 통해 비로소 실현됩니다. 잔소리는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서 피워내야 할 삶의 방식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잔소리를 하는데 심혈을 기울여야 합니다. 더 나아가 저의 잔소리가 많은 잔소리를 만들어내는 마중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런 잔소리를 만드는 철학적 화두를 던지려고 이제 <잔소리철학>의 장을 엽니다. 의견이 있으시면 연락 주세요. 여러분의 소리를 섞어서 이야기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sshin126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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