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눈

 

길상호

 

 

그날은 나무와 눈이 맞았다

한동안 뿌리 근처를 서성이며

내가 불쌍한가, 나무가 더 불쌍한가 가늠했다

처음에 잎도 하나 없는 나무 쪽으로

연민의 무게가 기울었다

아버지는 떠났지만 아직 어머니가 남아 있고

바람 잘 날 없었지만

이제는 바람에도 이골이 났으므로

나무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나무의 눈과 마주친 뒤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다

나무는 솜털 덮인 눈, 따뜻한 눈으로

터무니없는 내 생각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

우습다는 듯 우습다는 듯

첫눈은 가지마다 내려 쌓였고

그날 겨울눈을 준비하지 못한 나는 그만

나무 밑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프로필

길상호 : 충남 논산, 한국일보 신춘문예,시집 [모르는 척]외 다수

 

시감상

 

가끔 내가 나를 비관할 때가 있다. 비관의 기준은 내가 아닌 상대방인 경우가 많다. 무엇과 비교해서 무엇보다 어때서, 무엇보다 라는 말속에 숨어있는 것은 비교의 대상이 내가 아니라는 말이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타인과 비교한 나와 내가 인정하지 못하는 나. 과연 어떤 것이 비관적인지? 어쩌면 우리의 잣대는 비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본문의 말처럼 터무니없는 내 생각을 지켜보고 있는 것은 나 아닐까?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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