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은 보희와 문희라는 미인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김유신은 선덕여왕에 이어 진덕여왕마저 후손이 없자 후계자를 살펴보니 김춘추밖에 없었습니다. 유신은 여동생 중 한 명을 김춘추의 아내로 보내기로 했습니다. 이미 아내가 있는 춘추였지만 동생을 시집보내려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두 여동생을 집에 있게 하고 춘추를 집으로 데려와 축국을 했습니다. 축국은 지금의 축구처럼 공을 가지고 차는 놀이였는데 일부러 춘추의 옷을 밟아 찢었습니다.

“이런, 이런. 내 방에 들어가 계시오. 내 여동생에게 찢어진 옷을 꿰매게 하겠소.”

유신의 속셈을 모르는 춘추는 방에 들어가 기다리고 있게 되었습니다. 유신은 급히 방에서 기다리고 있는 큰 여동생 보희를 불러 바느질 도구를 챙기게 하고 춘추에게 가도록 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보희가 코피를 쏟자 동생 문희가 그 일을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춘추는 방문을 열고 들어온 유신의 동생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김유신의 동생이 미인이라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인지는 몰랐던 것입니다.

“춘추는 찢어진 옷을 꿰매는 문희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문희는 뿌리치지 않고 고개를 숙였을 뿐입니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눈이 맞았고 계속 밀회를 하다가 임신을 하고 말았습니다.”

김유신은 문희에게서 임신했다는 말을 듣고는 기회를 노렸습니다. 선덕여왕이 행차하는 시간과 장소를 알아내고 행찻길로 가서 문희를 나무에 묶었습니다. 미리 준비한 장작에 붙을 붙이자 화염이 치솟았습니다. 한편 가마를 타고 가던 선덕여왕은 느닷없는 연기를 보고 의아해서 생각하고 측근을 시켜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잠시 후에 측근이 김유신을 데려왔습니다. 선덕여왕이 까닭을 묻자 말했습니다.”

유신은 둘째 동생 문희가 혼인 전에 임신했는데 애비가 왕손이라고 밝혔을 뿐 이름을 말하지 않아 애비 없는 자식을 두고 보자니 불태워 죽이려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생사람을 화장한다는 말에 놀란 여왕은 일행을 바라보며 애비가 누구냐고 묻자 신하들은 일제히 김춘추에게 눈을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얼굴이 벌게진 춘추가 앞으로 나와 자신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여왕은 명령으로 화장하는 것을 중지시켰고 김춘추와 정식으로 혼인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문희는 김춘추의 둘째 아내가 되었고 훗날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습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어렸을 때 일입니다. 자매는 같은 방을 썼는데 어느 날 아침에 언니인 보희가 동생에게 말합니다. 자신이 경주 남산 위에서 오줌을 쌌더니 삽시간에 홍수가 나서 집들이 잠겼다고 말했습니다.”

오줌을 싸서 홍수를 이뤘다는 말에 사람들이 까르르 웃었습니다. 여자가 오줌을 누는 광경이 머릿속에 그려진 모양입니다.

“그러자 문희가 얼른 내가 그 꿈을 살 테니 팔라고 졸랐습니다. 보희는 오줌 싼 것이 창피해서인지 문희가 아끼는 빗을 받고 꿈을 팔았습니다. 그래서 큰 여동생 보희에게 갈 행운이 동생 보희에게 간 것이라고 했습니다.”

과연 그랬을까요? 그래서 김춘추와 만나려고 할 때 코피를 흘렸을까요. 제 생각은 약간 다릅니다. 코피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보희는 마침 달거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김춘추의 옷을 꿰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속셈이 있었던지라 달거리하는 보희 대신 문희를 들여보낸 것입니다. 김유신은 이렇게 김춘추와 처남 매부가 되었습니다. 이 두 사람의 협력은 김춘추가 진덕여왕에 이어 왕위에 오르자 국가를 정비했습니다. 또 고구려와 백제가 동맹을 맺고 위협하자 당나라와 연합해서 두 나라를 멸망하고 당나라마저 몰아내고 마침내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김유신은 가야 왕실의 후손으로 신라의 최고 가문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최영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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