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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부리 영감의 김포이야기] 선덕여왕 <151>

재담이 끝나자 노비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습니다. 성대모사를 하며 실감나게 했으니 칭찬받아야 하지요. 내가 신라의 시조들을 훌쩍 뛰어넘어 경문왕의 당나귀 귀를 말한 것은 주인인 양성지 영감이 말더듬이가 된 이유를 혹시 아는 노비가 있을까 해서입니다. 여종들이 많아 눈에 보여서 다음 이야기는 선덕여왕으로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혹시 여자 문제가 걸렸을지 모르니까요.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말을 더듬다가 그게 굳어졌는지도 모르지 않겠습니까.

“신라 때 여자 임금이 있었습니다. 기록에 남아있는 것으로는 최초의 여왕이지요.”

제 말에 노비들이 술렁거립니다. 여자가 왕이라니. 조선에서 상상도 못할 말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여자가 임금이 되었을까요? 성골로 이어진 왕실에서 아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골이 무어냐고 누군가 묻는다. 아마도 개나 소 뼈다귀인줄 알았나 봅니다.

“성골은 성스러운 핏줄로 왕족인 김씨 집안의 후손을 말합니다.”

또 술렁거립니다. 집안 내 혼인이라는 것은 조선에서 있을 수 없습니다.

“선덕여왕은 총명했기에 여왕이 되었는데 당나라 태종이 축하사절을 보내왔습니다. 그리고는 사신이 꽃을 그린 그림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선덕여왕은 분노로 뺨이 벌게졌습니다.”

신하들이 화난 이유를 묻자 그림을 보여주며 꽃에 나비를 그리지 않은 것은 자신이 처녀 임금임을 조롱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선덕여왕은 총명했지만 여자 임금이었기에 당나라를 비롯해서 백제도 우습게 여기고 자주 침범했습니다.

“어느 날. 흰색 개구리 무리들이 궁을 향해 울자 여왕은 백제군이 스며들었다고 토벌을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백제군이 어디에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여왕은 백제군이 여근곡(女根谷)에 숨어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신라군이 여왕의 명을 받고 그곳에 가니 과연 백제군이 있어 모두 일망타진했습니다. 신하들이 감탄하며 어찌 아셨냐고 물었더니 여왕이 볼을 약간 붉히더니 대답했습니다.

“흰색 개구리는 백제를 상징하는 것인데 이들 사내들은 음양의 이치로 여자를 탐하니 여근곡에 있을 것을 짐작했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훗날 지어낸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선덕여왕이 백제에 심어놓은 간첩의 보고를 받고 그럴 듯하게 꾸며서 말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나는 선덕여왕을 주인공으로 한 텔레비전 드라마를 머리에 떠올렸습니다. 드문드문 본 것이라 기억나지 않지만 책에서 본 것은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상대등 비담이 ‘여자 임금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워 염종의 군사와 함께 반란을 일으키지만 김유신에 의해 죽고 그의 집안도 몰살하지요. 이때부터 김춘추와 김유신이 역사에 등장합니다.

노비들은 여왕이 결혼을 했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안 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실제로는 선덕 여왕은 두 명의 형제와 혼인했지만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촌 동생인 진덕여왕이 대를 이어 많은 일은 했지만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 뒤를 진골인 김춘추가 뒤를 이었지요. 하여튼 선덕여왕 시절에 대해 대충 끝내고 휴식에 들어갔습니다. 노비들은 내 재담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야참으로 나온 도토리묵이 더 좋았나 봅니다. 관솔불을 켜놓고 그 아래에서 시시덕거리며 먹는 것에 열중합니다. 지성안이 다가와 묻는다.

“노비 중에 대대로 집안에 충성하는 사람이 있는데 만나기를 청합니다.”

도토리묵을 먹고 있던 내 귀가 번쩍 뜨입니다. 어서 데려오라고 하자 늙은 할멈이 내 앞에 나타났습니다. 양성지 영감의 아버지 양구주가 충청도 청풍에 있을 때 어머니가 집안에 있었다고 합니다. 눌재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들었다고 하는데 특이한 것이 있었습니다.

“나리가 집에 돌아오지 않자 집안이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하인들이 횃불을 만들어 산속을 찾아 다녔는데 새벽에 몸을 벌벌 떨며 나타났습니다. 그때부터 말을 더듬기 시작했답니다.”

최영찬 소설가

김포신문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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