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사설·기고
[기고] 멕시코 이민자 손녀의 고국 방문
박채순 
정치학박사 (Ph.D)
민주평화당 김포시을
지역위원장

지금으로부터 114년 전인 1905년 대한제국 말기에 1,033명의 한인들이 제물포에서 일포드호를 타고 미지의 땅 멕시코로 향했다. 영국 브로커가 일본인 회사를 통해서 미국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보냈고, 사탕수수 농장에서 인력이 필요치 않자 멕시코의 에네켄(henequén: 2미터 크기의 용설란 종류로 선박용 밧줄을 만드는 데 사용) 농장으로 이주시킨 것이다. 그들 중에 김수봉이라고 불리는 서울 출신 9살짜리 소년도 그의 아버지와 함께 고국을 떠났다. 그들 일행은 일본을 거쳐서 멕시코 내륙지방을 경유하여 멕시코 남동부 유카탄 반도의 메리다(Merida)지역에 있는 22개 에네켄 농장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들은 현지의 혹서와 다습한 작업 환경 속에서 언어와 문화가 완전히 다른 열악한 조건에서 계약된 4년 동안의 노예와 같은 생활을 견뎌내야 했다. 4년의 계약 기간이 끝났지만, 1910년 일본이 한국을 강제로 합병하여 돌아갈 조국이 없어졌고, 경비도 없었고 한국과 연락도 두절된 상태에서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현지에서 생을 마감하거나 고된 노동을 계속해야만 했다. 김수봉 소년은 아버지가 사고로 일찍 돌아가고 혈혈단신이 되어 에네켄 농장을 전전하는 신세가 되었다.

소년 김수봉은 이 농장에서 저 농장으로 전전하면서 현지인들에게는 이름도 없이 “이리와 아저씨”로 불리었다. 그가 25살 되던 해인 1921년 유가탄의 시골에서 농장으로 이주해 와서 심부름하던 마야(Maya)족 인디언 출신 15세 소녀와 결혼을 하게 된다. 당시 그의 족보를 찾거나 가져올 수 없었던 신랑 김수봉은 수사노 가르시아(Susano Garcia)라는 성과 이름으로 멕시코에 도착한지 16년 만에 가정을 이루게 된다. 김씨가 가르시아라는 성으로 바뀌게 되는데, 주위의 스페인계 사람들이 많이 쓰는 가르시아라는 성을 따서 혼인 신고를 한 것이다.

수사노 가르시아는 인디언계 부인과의 사이에 6남매를 두었고, 88세까지 모진 인생을 살다가 1984년에 한 많은 생을 마감한다. 수사노의 자손은 80명으로 늘었고, 멕시코의 메리다 지역 등에는 1,033명 중 살아남았던 분들의 자손들이 멕시코 전역에 3만 여명으로 늘어서 대부분 한인 정체성을 잃고 현지인화되어 생활하고 있다. 수사노 가르시아 손자들 중 왜소한 인디언 체구와 한인의 얼굴이 배어 있는 돌로레서 가르시아(Dolores Garcia)가 그의 뿌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멕시코 국립 기록원, 선박회사의 선승일지와 각종 매스컴을 뒤져서 할아버지와 증조 할아버지의 족적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마침 한인들이 이민 초창기부터 돈을 모아서 마련한 한인회관 건물을 개조하여, 2005년 한인이민 100주년을 맞아 한인이민박물관 건립위원회를 만들었고, 2007년 이민사 박물관을 개관하였다. 돌로레스는 할아버지 족적을 연구하면서 박물관에서 자원봉사를 했으며, 2018년에는 이민역사를 많이 아는 회계사인 그녀가 제3대 박물관장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물론 혼자 근무하는 박물관이며 한국 정부에서 연간 지원해 주는 7,500불로 매월 350불 정도의 급료를 받는다. 한인이민사박물관에서는 유물과 각종 서류의 전시, 자료 수집과 기록 보존 그리고 한인 후손들과 현지인들을 초대하여 여는 한국 관련 세미나 등을 개최하면서 사랑방 역할을 한다.

돌로레스 가르시아 관장은 인천광역시립으로 중구 월미도에 위치한 한국이민사박물관(관장 신은미)의 초청으로 20일부터 25일까지 한국을 방문하였다. 그는 국가편찬위원회를 찾아서 할아버지 등 멕시코 이민자들의 족적을 살펴보았고, 22일에는 한국이민사박물관에서 마련한 ‘멕시코·쿠바 특별전’에서 멕시코 이민자와 할아버지에 관련한 특별강연을 했다.

또한 동국대학교에서의 동포관련 학술세미나에 참석, 경복궁과 한국민속박물관을 방문, 강화도 평화전망대를 찾아서 남북한의 분단 현실을 직접 보는 등의 여러 일정을 소화했다. 25일 김포시 아트홀에서 있었던 꼬꾸메 풍물단 공연을 관람하는 등, 할아버지 고국의 여러 모습을 살펴보았다. 

그녀는 할아버지가 늘 뜰에서 하늘을 쳐다보면서 “저 큰 별이 내 어렸을 적에 한국에도 있었다.”라고 하면서 한국에 계실 어머니와 형제들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25일 인천 공항을 떠나면서 돌로레스는 할아버지 대신 114년 만에 찾은 할아버지 고국은 매우 감동적이었으며, 멕시코에 돌아가서 “한국과 멕시코의 교류와 할아버지 조국과 문화를 알리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김포신문  gimpo1234@naver.com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

김포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포토뉴스
  • 1
  • 2
  • 3
  • 4
  • 5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