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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부리 영감의 김포이야기] 임금님 귀 <150>

토정 선생의 하명을 듣고 양성지 영감의 동네 친구인 원통 훈장을 찾아가려고 했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부스럭거리자 양동이도 깨어났습니다. 요즘 양동이는 점점 기억을 잃어갑니다. 일제 식민지 시절까지 또렷하게 기억했지만 지금은 인조 시대까지 기억할 뿐입니다.

“풍문, 나 꿈꾸었어. 반정이 일어나 임금이 쫓겨나는데 그 사람이 바로 광해군이야.”

나는 아무 대꾸도 안 했습니다. 어떻게 양성지 대감의 깊은 곳을 헤아려 치유할까 하는 마음뿐이었기 때문입니다. 몇 번 말을 걸다가 반응이 없자 동이는 벌렁 누워버렸습니다. 궁리 끝에 나도 밤에 동네 사람들을 모아다 재담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원통 훈장이 하는 것을 보면 이야기는 흥미로운 내용이나 전달방법에서는 저와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원통 훈장에게 라이벌 의식도 있습니다. 세상에, 재담에 공짜라니. 나 같은 사람은 뭐 먹고 살라는 겁니까. 그래서 청지기 지성안을 찾아가 의논하기로 했습니다.

“오호, 토정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고요?”

지성안도 양성지 영감이 나무에서 떨어져 목을 다친 것이나 열병 때문에 말을 더듬게 된 것이라고 믿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심리적 요인이 있다는 것에 동의하고 재담을 들어줄 사람을 모았습니다. 우선 양성지 가문의 노비들에게 들려주기로 하고 낮에는 재담을 공책에 적었습니다. 급히 도망쳐 오느라 재담 집을 챙기지 못했는데 짐작컨대 염포교가 갖고 있을 것입니다

드디어 밤이 되었습니다. 청지기의 명에 따라 삼십 여명 노비들이 모두 가마니에 앉았습니다. 불은 켜지 않았습니다. 아직 저녁이라 그리 어둡지 않았습니다.

“신라에 경문왕이라는 임금이 있었습니다. 훌륭하게 통치를 해서 만 백성이 우러러 보는데 임금에게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귀가 자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경문왕은 처음에는 몰랐는데 왕비가 자신의 귀가 커진다는 말을 듣고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왕이 거울을 보니 매일 조금씩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귀는 무럭무럭 자라 마침내 당나귀의 귀처럼 길어졌습니다. 부끄러움에 왕은 아프다고 핑계를 대고 조회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왕은 고민 끝에 왕비에게 커다란 두건을 만들게 해서 귀와 머리를 덮었습니다. 머리카락이 두건에서 삐져나오자 이발사를 불렀습니다. 머리를 다듬기 위해 위해서 두건을 벗긴 이발사는 놀라 자빠질 뻔 했습니다.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였던 것입니다. 왕이 위협했습니다.

“만약 내 귀가 당나귀 같다는 말이 들려오면 네가 한 말로 알고 목을 베겠다!”

이발이 끝난 뒤에 왕은 두건을 쓰고 조회에 나갔습니다. 신하들은 멋진 비단 두건을 쓴 임금을 찬양했습니다. 그 뒤로 경문왕은 두건을 쓰고 나가 몇 년이 흘렀습니다. 왕은 처음에는 두건이 번거로웠지만 이제는 한 몸처럼 거북하지 않았습니다. 시중에서 이상한 소문이 든다는 것이었습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신하들이 임금을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탄로난 것을 눈치 챈 경문왕은 당장 이발사를 끌고 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이발사를 찾아갔다 돌아온 신하의 말에 의하면 병으로 죽은 지 한 달이 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문이 어디서 났는가 알아보니 갈대밭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갈대밭에서 내 귀가 당나귀라고 했다 이거지? 찾아가서 확인해 봐야겠다.”

경문왕은 호위무사만 데리고 갈대밭으로 갔습니다. 정말 바람이 불자 갈대밭이 흔들리면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희미하게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왕이 이발사의 아내를 부러 따져보니 이발사는 임금님 귀가 당나귀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지만 말할 수 없어 병이 나고 말았습니다. 죽음이 가까워진 것을 예감한 이발사는 아무도 없는 갈대밭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실컷 외치면서 속에 응어리진 것을 풀어내고 집에 돌아와 편히 죽은 것입니다. 신라 사람이 다 알게 되니 왕은 할 수 없이 두건을 벗었다고 합니다.

최영찬 소설가

김포신문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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