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숙
경희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 호칭 바로잡기

 

> 대학에서의 선후배사이

대학에서 만난 선후배는 공적인 관계로 만난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 호칭도 일단 공적이어야 한다. 같은 과 선배는 ‘선배님’으로, 같은 과 후배는 ‘이름’이나 ‘씨’를 붙여 ‘홍길동 씨’와 같이 부르는 것이 바른 호칭법이다. 물론 가깝게 지내는 후배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공적인 자리이거나 후배가 나이가 든 경우라면 ‘씨’를 붙여 대접하여 부르는 것이 옳다.

처음에는 공적인 자리에서 만났지만, 서로 마음이 통하는 선후배가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 남자 대 남자라면 ‘형’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조심해야 할 것은 심리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남녀 간이라 하더라도 ‘오빠’와 ‘누나’를 공개적으로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은밀히 대화를 나눌 때나 쓸 수 있다.

 

> ‘아버지’에 대한 호칭

‘아빠’는 어린아이들이 아버지를 부르는 말이다. 그러니 철들 나이가 되면 의당 ‘아버지’라는 호칭어를 써야 한다. 물론 아버지와 단둘이 있는 경우라면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아빠’라는 친밀층위의 호칭어를 쓸 수 있다. 문제는 공적인 자리에서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아버지를 ‘아빠’라는 유아어로 호칭하는 것이다. 이렇듯 호칭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은 자신의 의식이 성숙하지 못하다는 또 다른 증거이다. 곧 생각이 아직 아이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호칭어 사용법이 사람의 성숙도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되므로 나이에 걸맞고, 또 관계에 맞는 호칭어를 선택해서 써야 할 것이다.

 

> 오빠의 아내가 된 친구

무조건 ‘언니’가 된다. 결혼 전까지만 해도 이름을 부르던 아랫사람인데, 오빠와 결혼하면서 갑자기 윗사람이 되었으니 처신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할 도리가 없다. 후배가 ‘오빠’와 같은 반열에 올랐으니 거기에 맞춰 ‘언니’로 대접할 수밖에 없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경우라면 ‘새’를 붙여 ‘새언니’라고 호칭을 해야 한다. 그리고 ‘오빠의 아내’를 시댁 쪽 사람들에게 지칭할 경우에는 ‘새언니’, ‘올케’, ‘○○외숙모’등을 쓴다.

 

> 부인(夫人)

‘남의 아내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 요즈음의 젊은 세대들이 쉬운 것 같은 호칭인데도 너무도 의식 없이 실수하는 어휘 중에 하나이다. 자기 아내를 다른 사람에게 언급할 때는 ‘집사람, 안사람, 아내, 처(妻), 마누라’등을 쓰면 된다. 이 가운데 ‘마누라’는 어느 정도 나이든 사람이어야 쓸 수 있다.

 

> 부군(夫君)

‘남의 남편을 높이는 말’이다. 남편보다 격이 높다. 물론 ‘부군’도 선생님이나 깍듯이 모셔야 할 사람의 배우자에게는 쓸 수 없다. 제자가 여선생님의 남편을 위해 ‘사부(師夫)님’이라는 명칭을 별도로 만들어 놓고 있다. 그러나 ‘사부(師父)님’과 혼동되어 그런지 잘 쓰이지 않는다. 나이 드신 분의 남편을 지칭할 때에는 ‘김 선생님’이나 ‘김 사장님’과 같이 쓰면 될 것이다.

 

> 자제(子弟)

‘남을 높여 그의 아들을 이르는 말’이다. 상대를 고려하여 그 상대의 아들과 딸 또한 높여 불러야 한다. ‘아들’을 ‘아드님’, ‘딸’은 ‘따님’으로 불러야 한다. 이것은 상대를 높이는 것이지 그 아들과 딸을 높이는 것이 아니다.

 

> 자녀(子女)

남의 아들과 딸을 묶어서 말할 때 ‘자녀(子女)’라고 한다.

 

> 자식(子息)

자기의 아들 ․ 딸에게 쓸 수 있다. 자식이라는 말을 남의 아들 ․ 딸에게 쓰면 곤란하다. 어휘의 정서상으로 볼 때 ‘욕’으로 쓰일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 어휘개념 바로잡기

 

> 반증(反證)

‘반대가 되는 증거’ 또는 ‘반대되는 근거를 들어 증명함’이라는 뜻이다.

> 방증(傍證)

사실을 직접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되지는 않지만 주변상황을 밝힘으로써 증명에 도움을 주는 증거를 이르는 말이다(예: 방증자료).

‘방증’과 ‘증거’는 다르다. ‘증거’는 어떤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근거를 말한다.

 

> 임대(賃貸)

‘돈을 받고 자기 물건을 남에게 빌려줌’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임대아파트’라고 하면 주택공사나 토지개발공사 등에서 서민에게 빌려 준 아파트라는 뜻이 된다. 아파트를 지어 빌려준 입장에서 그렇게 표현 한 것이다. 건물이나 가게를 ‘임대’해 준 쪽에서는 일정 기간별로 빌려준 대가를 받게 된다. 그것이 ‘임대료’이다.

 

> 임차(賃借)

‘돈을 내고 남의물건을 빌려 씀’이라는 뜻이다. 이를 ‘세냄’으로 순화하여 쓰고 있다. 건물이나 가게를 빌려 쓰는 것을 ‘임차’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임차’한 대가로 내는 돈이 ‘임차료’이다.

 

> 일체(一切)

명사로서 ‘모든 것’을 의미한다. “우리학원은 공부에 일체의 책임을 지다.”, “나의 재산 일체를 학교에 기부 하겠다.” 등과 같이 쓰일 수 있다.

 

> 일절(一切)

부사이며 ‘아주’, ‘전혀’, ‘절대로’라는 뜻으로 쓰인다. “일절 모른다.”, “일절 소식이 없다.”, “일절 말하지 말라.”와 같이 쓰이는데, 사물을 부인하거나 금지하는 말과 어울리는 특징이 있다.

 

 

> 우연하다

‘뜻하지 않다’의 뜻이다.

 

> 우연찮다

‘필연하다’, ‘우연하지 아니하다’의 준말이다.

 

> 곤욕(困辱)

‘심한 모욕’ 주로 ‘치르다’와 어울려 ‘곤욕을 치르다’로 쓰인다.

 

> 곤혹(困惑)

‘곤란한 일을 당해 어찌할 바를 모름’의 뜻이다. (예: “언론에게 ‘곤혹’을 당하고 애인에게까지 추궁을 당하니 아주 ‘곤욕’스러웠다.” (☓) → “언론에게 ‘곤욕’을 당하고 애인에게까지 추궁을 당하니 아주 ‘곤혹’스러웠다.”(○)) 당하는 것은 ‘곤욕’이고 느끼는 것은 ‘곤혹’이다.

 

> 삐지다

‘칼 따위로 물건을 얇고 비스듬하게 잘라내다’의 뜻이다. (예: “국에 무를 삐져 넣다.”)

 

> 삐치다

‘성이 나서 마음이 토라지다’의 뜻이다. (예: “너는 만날 그렇게 삐치느냐?”). 우리가 흔히 쓰는 일상용어 가운데 “또 삐졌어?”는 “또 삐쳤어?”가 맞다.

 

> 지양(止揚)

‘피함’, ‘하지 않음’, ‘더 높은 단계로 오르기 위하여 바람직하지 않은 것을 하지 아니함’이라는 의미이다.

 

> 지향(志向)

‘어떤 목표로 뜻이 쏠리어 향함’이라는 뜻이다. 어형이 유사하여 자주 혼동되는 ‘지양’과 ‘지향’은 의미가 전혀 다르기 때문에 그 용법을 정확히 알고 바르게 써야한다.

 

> 결재(決裁)

‘무엇을 정할 권한이 있는 상관이 부하가 제출한 안건을 검토하여 허가하거나 승인하는 것’을 뜻한다. “결재를 받다.”, “결재를 올리다.”등과 같이 쓴다.

 

> 결제(決濟)

‘대금을 주고받은 당사자들 사이에 거래 관계를 끝맺는 일’을 뜻한다. “밀린 대금 결제”, “어음 결제”등과 같이 쓴다.

두 단어는 발음이 비슷하여 간혹 혼동된다. 모음 ‘에’와 ‘애’를 구별하지 못하여 생기는 현상이다. 두 단어의 뜻을 정확히 알고 쓰는 것은 물론이고 발음도 정확하게 해야 혼란이 없을 것이다.

 

> 충돌(衝突)

‘서로 맞부딪치거나 맞섬’이라는 뜻이다. 즉, 두 물체가 서로 다른 방향에서 오다가 서로 맞부딪치는 것을 말한다.

 

> 추돌(追突)

‘자동차나 기차 따위가 뒤에서 들이받음’이라는 뜻이다. 한 방향으로 가던 앞차가 갑자기 멈춰서면서 뒤차가 앞차의 꽁무니를 들이받는 것이 ‘추돌’이다.

 

> 부조(扶助)

‘부조(扶助)’와 ‘돈’ 사이에 사이시옷이 들어간 말이다. ‘애사나 경사에 상대를 돕기 위해 보내는 돈’을 가리켜 애사이든 경사이든 구별 없이 쓸 수 있다. ‘부좃돈’과 같은 의미의 단어로 ‘부조금’도 쓰인다. ‘부조’를 ‘부주’, ‘부좃돈’을 ‘부줏돈’으로 발음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 오랜만에

‘오래간만에’의 준말이다. ‘오랫만에’로 잘못 쓰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오래’와 ‘만’을 독립된 단어로 오해하고 둘 사이에 사이시옷을 넣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사이시옷을 갖고 있는 ‘오랫동안’에 유추되었기 때문이다.

 

> 난이도(難易度)

‘난이(難易)’와 ‘도(度)’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난이’는 ‘어려움과 쉬움’을 뜻한다. 이와 같은 의미의 ‘난이’에 ‘도’가 결합되었으니 ‘난이도’는 ‘어려움과 쉬움의 정도’가 된다. 그리고 특별히 ‘어려움의 정도’를 ‘난도(難度)’라고 한다. ‘쉬움의 정도’라는 의미의 ‘이도(易度)’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난이도’의 의미를 고려하면 “난이도가 높다.”나 “난이도를 낮추다.”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난이도’가 ‘어려움과 쉬움의 정도’인데, 그것이 높거나 쉬울 리가 없기 때문이다.

‘높다’나 ‘낮다’와 어울려 쓰일 수 있는 것은 ‘난이도’가 아니라 ‘난도’이다. ‘난도’가 ‘어려움의 정도’ 라는 의미를 지니므로 이는 높거나 낮을 수가 있다. “난도가 높다.”는 어려운 문제가 출제되었다는 것을 뜻하고, “난도가 낮다.”는 쉬운 문제가 출제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 뇌졸중(腦卒中)

일명 ‘뇌중풍’이라 한다. 뇌에 혈액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의식에 장애가 오고 사지에 마비가 오는 병이다. 한방에서는 ‘졸중풍(卒中風)’, ‘중풍(中風)’이라 한다. ‘바람 맞다’라는 우리말은 ‘중풍’을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뇌졸중’을 ‘뇌졸증’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졸(卒)’은 ‘갑자기’의 뜻이고, ‘중(中)’은 ‘맞다’의 뜻이어서 ‘뇌졸증’은 ‘뇌가 갑자기 풍을 맞음’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뇌졸중’ 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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