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현 
통진중 교사

때마침 시정 연설에서 대학 입시의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에 답하는 발표가 있었다. 수시를 축소하고 정시를 늘리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발표 이후에 이 정부의 핵심 지지층이라고 할 수 있는 여러 단체가 극도로 반대의 목소리를 내었다. 입시가 10년 전으로 후퇴하게 된다. 서열화가 더 심해지리라는 것을 반대의 이유로 들었다.

실제 통계도 그렇다. 정시만 있던 시절 서울대에 진학시킨 고등학교의 수는 500여 개였는데, 수시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선발하고부터 2배에 가까운 900여 개 고등학교에서 진학시킨 것은 교육 기회균등의 실천적 사례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수치가 정시 확대 반대의 명분으로 삼기에는 이 또한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교육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웅변하듯이 주변 환경 변화에 따라 입시를 바꾸는 정책은 펴지 말아 달라는 글을 여러 언론을 통해 호소해 왔다.

그 이유는 여론에 밀려 정책을 급하게 바꾸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의 몫이 되는 경우가 많았고, 결국, 이에 편승한 사교육 시장이 팽창하는 결과가 항상 초래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번 발표가 정부 내에서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한 것이거나 실무자 선에서 분석한 후 발표된 것이 아니라 시정 연설에서 정부나 여당조차 이해되지 않은 상황에서 깜짝 발표된 것은 유감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입시의 문제를 입시 제도를 바꾸는 것만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도 문제이다. 이는 감기로 기침하는 환자에게 기침이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마스크를 씌우는 것과 같다.

결국, 치료하지 않고 마스크를 씌워 주면 결국에서는 기침은 큰 병으로 되고 만다는 것을 왜 모르는 걸까?

인정하기도 싫지만, 우리 사회는 좌우보다 상·하의 문제가 커진 것이 현실이다. 입시에서도 그렇다. 대학의 서열을 변화하지 않고 오히려 공고히 되어 가고 있고, 상하층의 테는 더욱 짙어만 간다.

대학의 기능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오로지 취업과 급여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되어 버린 우리나라의 대학교육은 기형이 아니라 할 수 없다. 기형화된 대학에서 배출된 아이들의 가치관이 결국 급여와 일자리를 최우선으로 하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최근 불거진 조모 양의 입시 문제도 그렇다. 그 폐해의 문제점은 이미 오래전 여러 가지 장치와 변경 등을 거쳐 수정되고 정착되어 가고 있다. 연구 논문의 기제 금지와 외부 수상실적 입력 금지 등이 그 예이다. 그럼 이 시점에서 교육제도(작게는 대학 입시)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마스크로 당장 기침을 막기보다는 약을 투여하고 치료를 하여야 한다. 즉, 입시보다 이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 해결이 우선 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고등학교만 졸업하여도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보장해 주고, 대학에서 배우지 못한 경험이 갖는 가치를 인정해 주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입시는 시대의 변화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안정되게 바뀌어 가야 한다. 특정 이념이나 사상을 가진 몇몇 사람에 의해 입시가 또다시 바뀐다면 이 또한 오래가지 못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왕에 입시가 아젠다로 나온 만큼 교육 소계로 끝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만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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