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식
전 김포대 총동문회장
전 파독광부협회 회장
전 경기도의원

최근의 정치현실을 두고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늘고 있다. 나는 광부로 일하면서 배운 지혜가 많다. 그 중에서 깜깜한 어둠 속에서 출구를 찾아내는 광부들의 지혜는 언제나 나를 이끌어준다. 광부들은 온종일 땅속 깊은 갱도에 들어가서 일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조명이 나가면 깜깜한 어둠 속에 갇히게 된다. 순간 당황한 광부들이 출구를 찾기 위해 손으로 벽을 더듬으며 정신없이 움직여도 출구는커녕 방향도 제대로 찾기 어렵다. 그때 누군가가 이런 제안을 했다. “출구를 찾아 무턱대고 헤매느니 이렇게 앉아서 바람의 방향을 느껴보는 게 어떨까? 바람은 출구에서 불어오지 않겠는가.” 그의 제안대로 광부들은 한자리에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시간이 흐르자 감각이 조금씩 예민해지면서 바람이 얼굴을 미세하게 어루만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그들은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움직였고 마침내 출구를 찾아 무사히 갱도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출구는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나는 무엇보다 우리가 부딪치는 온갖 문제들을 어떻게 다루고, 또 거기서 무엇을 얻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각양각색의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들로 넘쳐나고 있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우리가 꿈꾸는 나라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냉철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세상을 보는 지혜’라는 책으로 유명한 17세기를 살았던 그라시안의 지혜가 오늘날에도 빛을 발할 것으로 보고 몇 문장을 적시하고자 한다.

 

1. 현명한 사람은 때를 놓치지 않고 행동하며 어리석은 사람은 언제나 늦게 시작한다. 시기를 놓친 뒤 서둘러 일을 시작하면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게 된다. 일을 여기저기 살펴본 뒤에 시작하면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반대의 결과를 얻게 된다.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을 소홀히 하고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은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다. 오른 쪽으로 가야 하는데 왼쪽으로 가버리며 왼 쪽에서 보아야 할 것을 오른 쪽에서 바라보게 된다.

2. 자신의 과실에 얽매여 다른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뭔가 잘못된 부분이 있어도 그것을 마지막까지 해내는 것이 자신의 성실함을 보여주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주위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변명을 한다. 어리석은 짓을 하고도 처음에는 단순히 부주의라고 가볍게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어리석은 짓을 끝까지 그만두지 않는다면 진짜 어리석은 자 취급을 받게 된다. 조그만 부주의로 해버린 약속이나 잘못된 결단에 언제까지고 얽매여 있어서는 안 된다. 어리석은 생각을 끝내 버리지 못하고 어떻게든 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에 빠져서 억지로 밀고 나가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어리석음과 함께 자멸의 길을 걸으려 하는 것이다.

 

3. 어리석은 자는 고집이 세며, 고집이 센 자는 어리석다. 잘못 판단하기 쉬운 사람일수록 자신의 생각을 고집한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 하더라도 양보를 하는 것이 현명하다. 언젠가는 내가 옳다는 사실을 사람들도 알게 될 것이며 그 속 깊은 행동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칭찬을 할 것이다.

 

4. 너무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자기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라면 온갖 논거를 늘어놓는 법이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의 판단은 감정에 강하게 좌우된다. 두 사람이 서로 으르렁대며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도리는 언제나 하나이며, 진실이 두 개인 경우는 없다. 타인의 의견과 충돌하게 됐다면 지혜를 짜내서 신중하게 이야기를 끌고 나가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지금과는 반대되는 입장에 서서 주의 깊게 의견을 바꾸기도 해야 한다. 상대방의 관점에서 자신의 동기를 검토해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무턱대고 상대방을 비난하는 일도 무조건 자신을 정당화하는 일도 사라질 것이다. 진실은 그것을 취급하는 방법에 따라서 단 것이 될 수도 있고 쓴 것이 될 수도 있다.

 

5. 언제나 이성에 바탕을 둔 행동을 하고 정의를 중히 여겨야 한다. 하지만 정의에 몸을 바치는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은 많지만 몸으로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정의를 행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위험이 미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이루어진다. 조금이라도 신변에 위협을 느끼면 사기꾼들은 정의를 버리며, 정치가들은 교활하게 정의의 깃발을 내리고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뗀다. 때로 정의는 우정, 권력은 물론 자신의 이익조차도 거침없이 던져버린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정의를 버리는 것이다. 약삭빠른 사람들은 교활한 궤변을 늘어놓으며 ‘보다 고매한 목적을 위해서’, 혹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기 시작한다. 하지만 진실로 성실한 사람은 이러한 속임수를 용서할 수 없는 배신이라 생각하고 약삭빠르게 입장을 바꾸지 않으며, 더욱 자부심을 갖고 신념에 따라 행동하며, 언제나 진실의 편에 선다. 그들이 다른 사람과 의견을 달리 하는 것은 그들의 마음이 변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진실을 포기해버렸기 때문이다.

 

<'광장 정치'에 무안해진 정치권…뒤늦게 출구 모색?> 언론(CBS노컷뉴스)의 기사 제목이다. 뉴스는 조국 장관 임명 이후 정치권과 '광장 정치'가 극명하게 찬반으로 갈라선 현상을 수습하는 논의들을 소개하고 있다. 조 장관 주변을 둘러싼 논란과 검찰 수사 등과 관련해 조국 찬반 집회가 서울 서초동과 광화문에서 대규모로 일어나자, 제도권 정치의 무능을 질타하는 비판에 뒤늦게 반응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논의 테이블에 앉은 여야가 얼마나 많은 성과를 도출할지는 미지수라고 밝히고 있다. 나는 이러한 형세에서 꼭 필요한 지혜가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출구를 찾아내는 광부들의 지혜라고 생각한다. 꽉 막힌 갱도에서 출구를 찾아가는 광부들처럼 정치권 모두 가르시안이 제시한 다섯 가지 혜안을 가슴 속에 새기면서 국민들의 바람이 무엇인지를 온 몸으로 느끼며 대처해갔으면 좋겠다는 것이 촌로의 간절한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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