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말에 지성안과 양동이는 물론이고 토정 선생님마저 침을 삼키고 있었습니다. 제가 잠시 말을 멈추자 재촉한 것도 토정 선생이었습니다.

“네, 네. 말씀드립지요. 다음 날 아침. 소매치기 판서가 천에다 곱게 싼 금을 임금에게 바쳤습니다.”

임금이 어떻게 바꿨느냐고 물으니 소매치기 판서는 대답했습니다. 점심을 먹으러 가서 사람들 눈을 피해 슬쩍 은수저를 토막내어 소매에 감췄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와 기회를 엿보면서 약속한 저녁이 되자 자신이 졌다고 말해 임금을 방심시켰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주머니를 열었다가 닫으면서 감췄던 은수저 토막과 재빨리 바꿔치기했다고 고백하며 임금을 속인 죄를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런 기가 막힌 솜씨에 임금이 소매치기하는 까닭을 물었습니다. 소매치기 판서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작년에 사신의 임무를 다하고 돌아올 때였습니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으면서 시체 한 구를 보았습니다. 보기에 딱해서 하인을 시켜 잘 묻어주었습니다. 그날 밤 꿈에……”

나타난 사람은 꾸벅 절하며 자신은 중국 최고의 소매치기로 명성을 날렸다고 소개했습니다. 대부분의 악당이 그렇듯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고 합니다. 그런 자신을 조선의 사신이 온정을 베풀어 시신을 거둬주어 고맙다고 하면서 은혜를 갚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자가 무언가 주는 시늉을 해서 자신도 얼떨결에 받았다고 합니다.

“그 뒤로 좋은 물건을 보면 어느새 제 손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 소매치기가 자신의 재능을 제게 물려준 것 같습니다.”

임금이 한탄합니다. 좋은 일도 사람 봐가며 해야 합니다. 하필이면 소매치기에게 온정을 베푸는 바람에 판서 체면에 어울리지 않은 재능을 얻은 것이다.

“할 수 없소. 어차피 벌어진 일이니 하고 싶은 대로 하시오,”

임금이 고개를 끄덕이며 도둑질을 용인했습니다. 임금의 허락이 떨어졌으니 그 뒤로 소매치기 판서는 거리낌 없이 물건을 훔쳐 감상하고는 돌려주었다고 합니다. 제가 재담을 끝내자 토정 선생이 말했습니다.

“풍문이 좋은 말을 해주었네. 바로 그거야. 양성지 대감이 사고로 목을 다친 후 말더듬이가 된 것은 몸 때문뿐만 아니라 습관도 있어.”

토정 선생의 말에 의하면 판서가 굳은 의지가 있었다면 소매치기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음에도 훔치는 재미 때문에 계속했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양성지는 두 번의 끔찍한 환란 속에서 말을 더듬음으로 역모에서 제외되어 생명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말을 더듬는 것을 고칠 생각을 못한 것입니다. 좋은 제도를 많이 발굴해 상소함으로 임금의 총애를 받고 있지만 높은 자리에 오르지 못하는 것도 말을 더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 후년에 이조판서에 오른다 하니 분명히 말더듬이를 고쳤을 것입니다.

“선생님, 그러면 언제 그 여의사를 만날 수 있을까요?”

김우희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것도 좋고 신세 지고 있는 양성지 대감의 장애를 고칠 수 있다는 것이 좋아 물었습니다. 토정 선생이 손가락을 꼽아 보더니 말합니다.

“앞으로도 열흘이 더 지나야 해. 지금은 몹시 바쁘거든.”

“선생님은 지금 병원이 눈에 보이십니까?”

“물론이지. 내가 저승에서 다……”

여기까지 말씀하시고는 입을 다뭅니다. 저승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나는 더 묻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말씀해 주시겠지요.

최영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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