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식
전 김포대 총동문회장
전 파독광부협회 회장
전 경기도의원

신문기자로 일하다 작가로 전업해 ‘뒷모습 관찰가’로 잘 알려진 한상복님의 <감이 온다>라는 책은 넘치는 정보와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대에는 분석과 전략만으로는 부족하고, 중요한 것은 탁월한 통찰과 그것을 가능케 하는 힘이라는 진단 하에 우리 안에 잠든 감을 깨우라고 권유하며 그 논거로 몇 가지 이야기를 들어 설명한다.

(이야기 1) 텔레비전의 한 교양 프로그램에서 고양이의 뛰어난 균형 감각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했다. 제작진은 먼저 고양이의 긴 꼬리에 주목했다. ‘꼬리를 이리저리 움직여 무게중심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추론에서였다. 실험을 위해 꼬리를 동여맨 뒤 좁은 담 위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고양이는 큰 불편 없이 담 위를 움직였다. 다음은 눈. 눈을 가리고 담 위에 올려둔 실험결과도 마찬가지였다. 고양이는 눈이 보이지 않는데도 주춤대거나 발을 헛딛지 않았다. 마지막 시도는 엉뚱하게도 수염이었다. 수염을 접착테이프로 고정시킨 뒤 고양이를 담 위에 올려주었다. 그러자 예상 밖의 확연한 변화가 나타났다. 고양이가 웅크린 채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제작진이 고양이를 안아 바닥에 내려주었으나 겁에 질린 것처럼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일까? 바로 감각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수염은 고양이의 가장 중요한 감각기관인데 수염이 접착테이프에 붙는 바람에 고양이는 감각을 잃었고, 난생처음 겪는 혼란에 어찌해야 할지 모른 채 납작 엎드린 것이다. 수염은 고양이의 신경계와 밀접하게 연결된 일종의 ‘안테나’다. 고양이 수염은 예민해서 공기 중의 미세한 진동까지 감지할 수 있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공간 감각을 갖게 해준다. 아슬아슬한 곳에서 움직이도록 도와주는 균형감각의 원천이기도 하다. 심지어는 감정까지 수염으로 표현한다. 호기심이 생기거나 사냥을 할 때에는 수염이 앞 쪽을 향하며, 나른하거나 만족스러울 때에는 아래로 처진다. 고양이의 수염처럼 우리에게 ‘안테나’역할을 해주는 게 느낌이다. 느낌은 우리를 어딘가로 이끌며, 결정을 내릴 때는 특별한 사인을 보내준다. 그리고 느낌이 전해주는 메시지를 잘 알아듣는 사람더러 ‘감이 좋다’고 한다.

(이야기 2) 손을 씻는 것만으로 병균 감염을 막을 수 있다는 게 지금은 상식이지만, 150년 전만 해도 전문가인 의사들조차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1840년대 말, 헝가리 출신 의사 제멜바이스는 빈(오스트리아)의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묘한 점을 발견했다. 병원은 두 개 병동의 분만실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의사들이 담당하는 1병동의 산모 사망률이 조산사 중심의 2병동보다 항상 높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분석을 해봤더니 5년 동안 1병동 산모의 사망률은 9.9%퍼센트였으나, 2병동 산모의 사망률은 3.4퍼센트에 그쳤다. 제멜바이스는 의사들이 다른 환자를 돌보거나 사체를 검안하다가 분만실로 불려 들어가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의사들에게 “분만실에 들어갈 때는 장비와 손을 씻으라”고 주문했다. 그 결과, 1병동 산모의 사망률을 18퍼센트에서 1퍼센트까지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이내 의사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권위 있는 몇몇 의사가 ‘손과 수술복에 묻은 피야말로 우리 명예의 상징’이라는 글을 발표하며 제멜바이스의 시도를 방해하고 나선 것이다. 제멜바이스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확실한 근거를 내놓지 못한 채 의료계에서 자의반타의반 퇴출당했다. 그러나 그의 탁월한 감은, 그가 사망한 뒤인 1879년 루이 파스퇴르에 의해 박테리아의 존재가 발견되면서 진실로 입증되었다. 정보가 부족했던 예전의 전문가들에게는 ‘감’이 오늘날의 ‘빅 데이터’노룻까지 했다. 그들은 대상을 관찰하다가 감으로 핵심을 짚어내 직관적으로 해결책을 내놓곤 했다.

(이야기 3) 악어는 짐승들이 물을 마시러 다가오면 물속에 들어가 눈만 내놓고 기회를 엿본다. 물가로 온 짐승들은 쭈뼛댄다. 그들 대부분은 악어가 물속에서 자신을 노리고 있음을 감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러면 ‘인내의 줄다리기’가 장시간에 걸쳐 이어진다. 목이 타는 짐승들은 뭍에 서서 안타깝게 물을 바라보고, 악어 또한 물속에서 냉정한 눈으로 뭍의 먹잇감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이때 짐승들이 물마시기를 포기하고 돌아서면 악어는 허탕이다. 하지만 마침내 무리 중의 한 마리가 갈증을 참지 못하고 물속으로 들어간다. 녀석이 물을 마시고 한숨 돌리는 순간, 악어는 이미 지척에 다가와 있다. 악어는 더러운 물에서도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그러니 깨끗한 물은 ‘손님맞이’용도다. 물이 신선해야 물을 마시러 오는 짐승들의 발길이 이어질 것임을 악어는 안다. 노력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은 악어와 묘하게 닮았다. 인내와 꾸준함에서 특히 그렇다. 그들은 악어처럼 돈이 오는 길목을 지키고 기다린다. 악어가 자기 영역을 돌아보듯, 부자들도 준비와 관리를 통해 자신만의 시스템을 지켜내고 키워나간다. 매일매일 점검하며 잠재의식 속에 다져놓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익히는 과정에서 경험과 시간이 감으로 다져진다.

저자는 감을 꼭 찍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감을 제대로 잡으면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신세계를 만나게 된다고 말한다. 어렵던 영어단어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고, 껄끄럽던 상사와의 관계가 술술 풀리며, 날아오는 야구공이 말 그대로 수박만 하게 보이고, 이런 감에 경험까지 쌓이면 자기 분야의 ‘달인’이 된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나름의 감이 있다. 아침에 집을 나와 지하철역으로 향하다가 뭔가 찜찜한 느낌에 확인해보니 깜빡하고 지갑을 두고 온 것이라면 꽤 좋은 감을 발휘한 것이다. ‘감’도 훈련을 통해 계발이 가능하다. 낯선 느낌이 두근거림과 함께 전해진다면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그게 과연 무엇인지, 느낌에 집중해볼 필요가 있다. 삶의 방향을 바꿔줄 중대한 계기가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일 수도 있다. 탁월한 느낌과 감은 남들이 범접할 수 없는 ‘나만의 신비로운 경쟁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우리 모두 일상에서 자기 나름의 특유의 느낌 안테나를 닦고 개선해보자. “느낌은 생각이 되고 생각은 말이 되며, 말은 행동이 되고 행동은 습관이 되며, 습관은 품성이 되고 품성은 운명이 된다.” 우리 안에 깊게 잠들어 있는 감(感)을 깨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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