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 화

1973년생, 풍무동

면허를 딴 지는 15년쯤 지났는데 운전을 거의 하지 않아서 나는 초보 운전자 중에서 중에서도 왕초보 운전자에 속한다. 그래도 최근 들어서 자주 운전을 하려고 하다 보니 내가 운전하는 차에 남편이 동석하게 되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 날은 내가 운전을 해서 어딘가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처음 가는 길이었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기에 내가 운전을 하게 되었다. 아직 초보 운전자인 나는 운전을 시작할 때마다 긴장하긴 했지만 복잡한 서울이 아닌 가까운 곳은 조금씩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날따라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안내 멘트를 들으면서 그것을 운전에 반영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운전하는 중간에 내비게이션이 “500m 앞에서 우회전 하십시오”라고 안내하는 것을 들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남편도 “우회전, 우회전”이라고 옆에서 말하는 것을 분명히 듣긴 했다. 그러면서 우회전해야겠다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우회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차선을 미리 오른쪽으로 변경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오른쪽 사이드 미러를 통해 보이는 차들이 다소 무섭게 느껴질 정도로 앞으로 달려 나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500m 앞이 정확히 어디쯤인지, 처음 가는 길이라 그런지 그날따라 더 애매하게 느껴졌다. ‘어쩌지? 우회전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이쯤에서 우회전해야 하는데 여기서 우회전 하는 게 맞는 건가? 저 차는 왜 저렇게 무섭게 달려오는 거지?’ 머릿속으로는 여기서 우회전을 해야 하나, 다음에 해야 하나 생각하면서도 이미 나는 우회전 할 곳을 지나친 채로 계속 직진을 하고 있었다.

내 머릿속도, 핸들을 잡은 손도 나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 때 내비게이션도 당황한 듯, “경로를 벗어났습니다. 경로를 벗어났습니다.” 라며 경고 멘트를 반복해서 말해주고 있었다. 그보다 더 나를 당황하게 만든 건 버럭 하며 쏟아내는 남편의 말이었다.

“우회전 안하고 뭐해? 우회전하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우회전! 우회전! 우회전했어야 된다고! 맘대로 다닐 거면 내비게이션을 왜 달고 다녀? 나도 말했고 내비게이션도 말했잖아! 뭐하는 거야.”

남편의 버럭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오른 나는 조용히 하라며 남편보다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 와중에도 당황한 내비게이션은 제 할 일을 하느라 노력하고 있었다.

“경로를 재탐색 중입니다. 경로를 재탐색중입니다. 경로를 재탐색중입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색한 침묵을 깨는 내비게이션의 새로운 안내 멘트가 들리기 시작했다. 내비게이션이 찾아낸 다른 길에 대한 안내 멘트에 따라 운전을 하며 안정을 되찾은 나는 결국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원래 우회전해야 했던 길대로 갔었다면 가지 않았어도 되었을 테지만 다른 길로 갔기에 해안도로를 달리며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비록 돌아가는 길이었지만 중간에 덤으로 멋진 풍경도 보았고 결국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그것으로 된 거였다. 하지만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고 나서 다시 생각하니 내가 길을 잘못 들었을 때 했던 남편의 말과 태도에 생각할수록 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처음 가는 길에, 운전도 서툰 나에게 우회전하지 않았다고, 길을 잘못 들었다고 그렇게 윽박지르고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게 동승자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까? 그 순간에 남편의 버럭 소리에 당황해서 우회전해야 한다는 그 생각 하나만으로 무리하게 급하게 차선변경을 했다면 어쩌면 달려오던 차와 부딪히거나 더 큰 사고로 이어졌을 수도 있다. 놀라서 급브레이크를 밟을 수도 있었다. 당황했고 화가 났고,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느낌이었다. 당장 핸들을 손에서 놓고 차를 세워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던 중에 내비게이션이 경로를 재탐색해주었고 그 도움을 받아 조금은 돌고 돌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던 거였다.

그 일로 인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초보 운전자이고, 처음 가보는 길이었고 길을 잃었을 뿐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 길에서 우회전하지 않았다고 해서 길이 완전히 끝나는 것도 아니고 목적지를 찾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길을 잘못 들어선 건 분명 내 잘못이었다. 하지만 그럴 때 동승자가 “괜찮아. 저 쪽 길로 갔어야 되는데, 괜찮아, 당황하지 마, 다른 길이 있을 거야. 같이 찾아보자. 천천히 계속 가다보면 다른 길이 나올 거야. 침착하게 그대로 가면 돼”

이렇게 말해주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길을 잃어 당황한 초보 운전자에게 큰 힘이 되지 않았을까?

가끔 우리는 인생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 때를 마주하곤 한다. 이 길로 가야 하나? 저 길로 가야 하나? 그럴 때 내비게이션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다음에서 좌회전하십시오’라고 말해주는 내비게이션처럼 이런 선택을 하라고 명쾌하게 미리 안내해주는 인생의 내비게이션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보면 우리는 인생에 있어서 누구나 초보 운전자와 마찬가지다. 다만 어떤 일을 오래 하다보면 그것에 대해 다른 사람보다 더 잘 알게 될 수는 있다. 그건 아마도 자주 가서 익숙해진 길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처음엔 누구에게나 낯선 길이었으나 자주, 오랫동안 가다 보면 익숙해지고 잘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나 역시도 인생이라는 길을 지금도 조심스레 지나고 있지만,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 이것만이 정답이고, 갈 수 있는 길은 오직 이것뿐이다 라는 건 아니었다. 그 당시엔 절망적이고 힘들어 방황할 수는 있어도 돌고 돌아 결국 가고 싶은 곳을 가게 되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다른 길로 가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 어떤 것도 정답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길이라고 내가 가기에도 좋은 길은 아니었고, 낯설고 힘든 길이어도 용기 내어 가다보면 좋은 결과가 있는 경우도 있었다.

누구나 한 번 뿐인 인생이고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다. 그렇기 때문에 확신이 생기지 않아 더 망설여지고, 때로는 길을 잃고 헤맬 때도 있다. 그럴 때, 길을 잃거나 헤매는 누군가에게 남편이 했던 그런 식의 반응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날의 사건(?)을 겪으면서 내가 깨닫게 된 건 누군가 인생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거나 길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을 때 그런 식의 반응을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는 것이다.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본인도 답답하고 힘들 것이다. 그럴 때 같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또는 동승자로서, 좀 더 공감하는, 따뜻한, 현명한 조언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길을 잃고 헤매는 그 누군가가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자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경로를 재탐색중입니다.

우리가 길을 잘못 들었을 때 내비게이션이 말해주는 안내멘트이다.

경로를 재탐색중인, 길을 잃은 누군가가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어떤 길로 가야할지 모를 수도 있어. 지금 가는 길이 잘못된 길인 것 같아 불안하고 당황할 수도 있어. 괜찮아, 괜찮아, 처음이니까 그럴 수도 있어.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천천히 가다보면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조금 돌아가도, 해매이더라도 그 길에서 분명히 얻는 게 있을 거야. 포기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계속 가보는 게 중요해. 너는 지금 경로를 재탐색중인거야”라고 말이다.

 

< 당선소감 / 윤정화 >

무더운 여름더위가 한풀 꺾인 듯 한 어느 날, 당선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기쁜 마음과 함께 부끄러움과 감사함이 가슴 한켠에서 벅차게 올라옵니다.

어른이 되면 덜 고민하며 좀 더 현명해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인생은 어렵고 서툴고 미숙한 듯합니다. 그 와중에 글쓰기와 함께하는 경험과 성찰은 나를 조금 더 지혜롭게 만들어 주리라 믿습니다.

여전히 망설이며 도전하고, 넘어지며 후회할 때도 있겠지만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 앞에서 호기심에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재미있게 나이 들어가기를 소망합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이렇게 당선의 영광을 안겨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나를 좋아하고 지지해주는 주변 사람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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