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궁 금 순

1945년생, 김포시 양촌읍

여자가 밭에 나와 소설을 쓴다

 

사업한다 살림 다 날리고,

사십 대 중반 겨우 넘긴 어느 날 잠자다 심장마비로 가버렸다는 남자

기起다

 

기막혀 어린것들과 함께 죽자 했다

아이들 수달 같은 눈망울에 이슬

맺히는 걸 보니 차마 죽지 못했다

젊은 나이, 새 사람 만나 보라는 은근한 권유에도

새끼들 눈에 밟혀 안 해 본 일 없이 살았다

승承이다

 

한창 불붙을 때 꺼져 검부잿불이 됐다는 여자

 

아들마저 망해 혼자 변두리로 흘러와 사글세 빌라에 사는,

전轉이다

 

갈피 못 잡다 남의 땅 빈자리 하나 얻어 심은 푸성귀 나풀대며 야시랑 거리는 재미, 고것들 자식들 손에 들려 보내주는 재미, 결結까지 마저 쓰느라 서러워할 틈이 없다는 여자

 

- 허구한 날 왜 밭에 나와 삽질, 호미질하느라 힘을 빼요?

- 곰삭은 행간 엮느라

 

언젠가 두툼하게 엮을 거라는 소설 몇 쪽 분량

땡볕에 잘 키운 야들야들한 상추, 쑥갓

맛들은 문장에 호미로 김을 매는 오후가 펄펄 익는다

 

이랑과 고랑이 바르게 정돈되어 있는 푸른 원고지

땀 뻘뻘 집필에 열중한 그녀에게

얼마나 힘들었냐는 비료도 뿌려줄 겸 밭으로 나서는 길

다음 쪽을 넘겨주는 바람, 시원하다

 

<당선 소감 / 남궁금순>

상을 받게 되어 기쁩니다.

당선 소식에 아직도 잊히지 않고 있는 아버지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낟가리에 올라 볏단을 날라다 드리는 내게 하시던

“너 잠자리 잡으러 가냐?”

얼마나 몸놀림이 느리고 답답했으면... 해서입니다. 저의 글쓰기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문학의 바다에 발을 담근 지 20여년, 자벌레처럼 한 발, 한 발 내딛어 이제야 겨우 눈을 떠, 더 먼 곳을 내다보려 합니다. 남들에게 공감이 가는 글을 쓰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낯선 시 쓰기 앞에서는 점점 더 자신이 없어졌지요.

그런 내 모습이, 어느 날 문득 떠올라서 쓴 글이 이혜미 시인님과 심사의원 님들의 눈에 안쓰러이 다가갔나 봅니다.

용기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나와 함께한 문우님들, 그림자처럼 있는 듯 없는 듯 한 내게 그토록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셔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더 잘 쓰라는 채찍으로 알고 새로운 발돋움을 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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