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왕룡
전 김포시의원

정부가 2023년까지 일본계 품종 벼 종자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지난 7월 발표했습니다. 한일경제전쟁 와중에서 일본쌀 아웃을 선언한 것입니다. 언론들은 앞 다투어 이 내용을 보도하면서 본격적 종자주권 시대의 첫 걸음을 뗐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이러한 방침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역은 경기도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경기도 공급 벼종자의 72.5%가 일본계 품종인 추청이나 고시히카리이기 때문입니다. 일본계 벼 품종은 지난 50년간 한국 고급쌀 시장을 지배해왔습니다. 추청, 고시히까리 등 일본 품종은 국내 벼 재배면적의 10.3%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병충해에 약하거나 태풍 등 강한 비바람에 잘 쓰러지는 약점이 있음에도 밥맛 좋다는 인식으로 농가에서 선호하는 품종으로 자리잡아 왔습니다.

경기도는 종자보급소를 중심으로 농식품부의 발표에 맞춰 다각도로 대응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경기도는 당장 올해부터 수매를 통해 농가에 보급하는 정부 보급종자에서 일본계 품종인 '추청'과 '고시히카리'를 전년 대비 70톤 축소하고 국산 품종인 '삼광'과 '맛드림'으로 확대해 공급할 계획입니다. 또한 도(道) 개발 품종인 '참드림' 종자의 공급 확대를 위해 종자관리소의 재배지에서 직접 50톤의 종자를 생산해 공급하고 점차 규모를 늘려갈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참드림은 현장의 좋은 반응에도 불구하고 다수확 품종으로 분류돼 그간 정부 보급종에 선정되지 못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자율채종 생산농가, 품종개발 업체를 대상으로 200톤 규모의 종자정선 작업을 대행할 예정입니다. ‘정선’은 벼를 종자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이물질을 걸러내는 작업을 말합니다. 정밀공정을 필요로 하는 작업으로 민간업체가 자체적으로 설비를 갖추고 이 과정을 소화하기에는 부담이 따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을 도에서 대행해주기로 함에 따라 농가의 경우 벼 종자 개발에 한층 활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당장 내년에 민간에서 여주에 공급할 진상미 150톤의 종자(여주쌀 전체 종자의 30%)가 정선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경기도는 2003년도부터 농촌진흥청과 공동으로 밥쌀용 벼 신품종을 육성해 왔습니다. 그 결과 '추청' 벼보다 밥맛이 좋고 병해충에도 강한 중만생종 밥쌀용 벼 품종 '참드림', 한수이북지역에 잘 적응하는 중생종 '맛드림' 및 추석 전 출하가 가능한 조생종 '햇드림'을 개발, 보급하고 있습니다. 이와함께 경기도내 각 시‧군에서도 국산 신품종을 개발‧보급하고 있습니다. 이천시에서 농촌진흥청과 공동 육성한 '해들'과 '알찬미', 여주시와 화성시에서는 민간육성품종인 '진상미', '수향미'를 파주·안성·양평·연천·평택·고양 등에서는 '참드림' 품종을 지역 특화 브랜드로 육성중입니다. 이번 정부방침 발표에 따라 지역특화 브랜드 쌀들은 향후 입지가 강화될 전망입니다.

그럼에도 2023년 목표, 국내 일본계 벼 품종 종자의 정부보급 완전 중단 방침 발표는 몇가지 짚어 볼 점이 있습니다. 일단은 전격적 발표 과정이 일본과 경제적 갈등이 깊어지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서 다분히 시류에 편승한 것이 아니냐는 일부의 시각이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이번 방침이 지방, 지역과 상호 공감을 이룬 과정에서 나온 것이 아닌 중앙의 전격적 발표형식을 취했다는 점입니다. 종자주권 확립의 길은 중앙과 지방이 함께 일구어나가야 할 상생협력의 과제입니다. 종자주권 실현과정에서 지방은 중앙에 일방적으로 종속된 대상이 아닌 주요한 양대 축 중 하나라는 인식이 정립돼야 합니다. 이번 발표 과정은 종자주권의 지방분권화 정도의 취약성을 드러냈다는 비판도 나올 수 있습니다. 차제에 보급종 선정의 절대적 결정권을 쥐고있는 중앙의 권한을 지역 실정에 맞게 지방과 함께 나누는 문제도 공론화돼야 진정한 종자주권 토대 구축의 길이 열릴 것이라 생각해봅니다.

그 다음으로 살펴볼 점은 고시히까리 등 일본계 품종이 이미 수십년 동안 각종 경진대회를 통해 ‘경기미’로 홍보되어 오고 토착화 과정을 거친 탓에 과연 ‘종자주권 확보’ 사업의 대상으로 볼 수 있느냐는 의견입니다. 더구나 이 품종들이 이미 로열티 지급대상도 아니라는 점과 유통과정에서 갖고있는 여러 잇점도 현장을 설득하기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경기도 의회 9월 임시회에서 김철환 도의원의 관련현안 도정질의에 이재명 경기지사의 답변은 이러한 상황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당시 해당 답변 속기록을 그대로 인용해봅니다. “이게 불매운동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 거냐라는 문제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이게 일본에서 수입한 종자는 아니고 연원이 그렇다는 것인데 이 일본 품종을 사용하는 게 일본에 어떤 이익이 되는 것도 아니고 우리에게 어떤 손실도 되지 않습니다. 마치 일식집을 불매대상으로 삼을 것이냐 말 것이냐 그런 문제와도 관련이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품종 종자독립 이런 차원에서 우리 경기도는 일본 품종보다는 국산 품종을 개발하고 있기 때에 내년부터는 대대적으로 교체를 할 생각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예산도 편성해서 교체작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지사의 답변을 통해 ‘종자독립’이라는 가치판단적 명분이 현실상황에 적용되는 과정에서 세심하게 고려해 볼 점들이 여럿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불어 경기도가 대한민국 종자주권 실현의 길에서 담당할 역할의 중요성을 함께 엿볼 수 있습니다. 향후 경기도의 종자주권 실현계획이 여러 가지 제기되는 문제점을 극복하고 대한민국의 선도모델로 자리잡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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