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호
목사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문협 김포지부 감사

1. 들어가는 말

첫 글자를 배운 어린이가, 당신 이름자를 처음 깨친 할머니가 쓴 시 한편, 김포골드라인 어느 역 스크린도어에 게시되어 있을 푸른 그림을 상상한다. 사람은 생각하는 특별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 상상이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그리다'이다. 그린다는 것, 창작의 힘이다. 그 힘은 무, 없음에서 출발한다. 없음을 인식하거나 느낄 때 풍성해진다. 
엄마가 출근하면 아이의 상상은 엄마를 그린다. 작가나 시인은 상상으로 언어를 캐 문장을 그린다. 초등학교 6학년 쯤 되면 사춘기를 그려 넣고 반항의 색을 칠한다. 사람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자기만의 상상으로 소원의 기도를 그린다. 상상을 집합시키며 일생 동안 그 꿈을 그려간다. 
마음에서 그리는 것은 그리움, 선과 색을 그리면 그림, 언어를 그리면 시적 이미지로 나타나 작품이 된다, C.D 루이스는 '시적 이미지는 말로 그린 그림'이라고 정의했다. 그런 의미에서 말이 작품이 되는 공간, 그렇다면 문화예술은 "시와 노래와 그림"인 셈이다

2. 변방에서 두 배의 가치로, 김포 

수도권에서 무슨 이유에서인지 특히 지하철에 대하여 속된 말로 조선의 서출도 이 정도는 아니란 말을 들은 적 있다. 여러 사정과 문제가 있었겠지만 이유는 그냥 이유일 뿐이다. 김포도시철도는 태동부터 그리고 특별한 산고를 겪고 태어났다. 힘든 산고를 겪고 태어난 까닭에 골드라인이란 빛나는 이름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다행이다. 다행은 행복으로 가는 초석이 된다. 비록 두 칸짜리면 어떠랴, 때로는 실리보다 빈 깡통이 유용하게 소용될 때가 있는 것처럼 적어도 김포에도 지하철, 그 이름도 찬란한 골드라인이 시민 품에 있지 않은가, 그러나 "나도 있다"는 식은 안 된다. 45만 시민이 관리자가 되고 사용자자 되어야 한다. 안전운행은 어떤 이유나 설명이 필요 없다. 
평화문화1번지, 사람이 사람이 되고 사람이 사람다워야 한다. 비좁은 두 칸의 질서는 배려와 예의뿐이다. 나보다 당신을 중시하는 시민, 몰래카메라나 성범죄대책과 예방은 스스로 일등시민의식을 가질 때 자생할 수 있다. 행여 “김포골드라인 성범죄 만연” 헛바람이라도 있어서도 들어서도 안 될 말이다. 
문학은 인간을 이해하는 도구로서 인간의 삶이 받쳐져야 하며 인간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을 향한 태초의 법령은 말씀으로 태어난 시(詩)였다. 그 중심에 글로 표현된 문학이라는 장르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예로) 동서고금을 통해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성서를 보면 문학적 소양이 향상된 시대는 평화가 존재했다.  특히 시 언어가 작품으로 나타날 때 풍요와 행복이 지속되었다. 
우리는 300페이지 남짓 소설을 읽고 밑줄 친 아포리즘을 가슴에 정리한다. 한 부분일지라도 삶의 지표, 혹은 교훈적 메시지로 삼고자 하기 때문이다. 20여 행의 시에서 깊은 감명을 받고 삶의 터닝 포인트로 삼는다면 얼마나 기쁜일인가? 박세리 선수를 보고 꿈을 그리고 완성한 것처럼 경전의 시편 한 구절을 통해 자기 인생을 송두리째 신께 매인 누구처럼 그만큼 문학의 파급은 원대한 꿈을 그려간다.

3. 함량미달의 아름다움 

지하철 시란 서울시내 300여 역과 , 4,850여 개 스크린도어에 게시된 시를 일컫는 말이다. 서울시는 2008년부터 현재까지 “바쁜 일상에 쫓기는 시민들에게 문학을 통해 잠시나마 정서적 여유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이 사업을 시작했다. 
몇 년 전 어휘도 생소한 “지하철 시(詩)와 문학권력”이란 화두가 문학인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이른바 ‘함량미달의 시’라는 기사가 있었다. 대나무 소리구멍을 뚫어 타성을 연주하라는 말하기 좋아하는 언론과 몇몇 문인들로부터 뭇매를 맞기도 했다. 이유는 작은 제목에 언급한 "함량미달"이다. 각 사람마다 상상이 다르고 관상(觀想)의 이미지가 엄연히 다른데 무엇을, 어디에 기준을 두고 하는 말인지 따져보고 싶다. 
필자는 30년 넘게 초등에서 90넘은 어른에 이르기까지 짧게는 1분, 길게는 1시간 넘게 강론을 해왔다. 지금도 수준과 함량의 기준을 모른다. 유명시인이 볼 때는 짧은 시라고 함량미달이고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그저 좋은 작품으로 눈에 보인다는 말인지, 동의하고 공감하고 공론하고 비판하고 우리는 그 정도의 수준이다. 자기 잘난 맛에 산다는 옛말도 있지만 한 뼘만 생각해보면 자기가 잘나서 사는 게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웃이 되어주고 이해해주고 모자란 것을 채워주고 다독여주기 때문이다. 내가 있고 그가 있고 우리가 있다. 
유명인사가 퍽이나 다른 것 같아 보이지만 대보면 나와 흡사하다. 닮았다. 하는 짓도 그렇고 생각도 비슷하다. 부자가 하루 다섯 끼니를 먹을 수 있을까? 열두 채 기와집을 가진 사람이 밤마다 옮겨 다니며 잠을 잘 수 있을까? 학위는 없어도 행복할 수 있지만 문학에 지식이 적으면 행복은 반감될 것이다. 대개  글에 대한 감성이 풍부한 사람은 마음도 따뜻하다. 수준이하 혹은 작품성 또는 함량미달, 그럼에도 서울시 지하철 스크린도어 시 공모는 11년째다. 필자도 몇 년 전에 이름대면 다 알만할 김포의 유명시인 몇 분과 응모했는데 모두 다 그 "함량미달"인 작품이 당선되어 스크린도어에 게시되는 기쁨을 나눠가졌다. 
물론 지하철 도어라는 특성상 그들이 말하는 길고 암호처럼 난해한 문장으로 소위 신춘문예나 공모전용 “시”를 “좋은 시”로 말하는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함량이 부족해도 강한 울림이 있고 진정한 서정을 느끼며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가 명료하게 전달되는  “짧은 시”도 “좋은 시”라는 점을 간과하지 말았으면 한다. 
한편으로는 도어에 광고를 부착하면 광고비도 꽤 될 것이다. 아마 수백만 원에서 수천 만 원에 이르는 광고수익을 포기하면서까지 시민정서를 위해 애쓰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당연하지만 돈보다 사람을 더 귀하게 여겨 시민의 안녕과 평안으로 직결되도록 고운 심성을 생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의 단단한 고집과 치우치지 않는 결단이 문제를 만들려는 사람들보다 도리어 더 아름답게 비춰진 이유이다.

4. 눈길도 삭막한 지하철 공간, 뭉클한 감동으로 채워지길 

누군가 전철을 기다리다 마주대하는 짧은 시 한편, 오래 간직하고 싶은 소중한 추억이나 다정한 삶의 이야기가 저장된 휴대폰 카메라에 담아가는 시민을 그려본다. 혹 작품은 준수하지 못할지라도 내 생각과 같은, 공감이 되는 언어, 특히 시를 대하는 김포시민에 문학적 높은 수준을 미리 보는 것이다. 마음이 유순하고 온유한 더불어 살아가는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이쯤에서 김포시민으로 김포에서 활동하는 문인으로 김포시에 김포도시철도공사에 정중히 제언하고자 한다. 
벤치마킹은 그냥 베끼는 것이 아니다. 더 멋진 그림을 그려내 최고의 완성도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상상이 동반된 고민이다.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시가 반드시 스크린도어에만 게시되라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고민하면 스스로 놀랄만한 지혜가 따라온다. 김포골드라인 스크린도어에서 한글을 갓 뗀 어린이가, 당신의 이름석자를 막 깨친 할머니가 수순함과 뭉클한 삶이 묻어난 수준이 조금 낮을지라도 그러나 너무 고아서 더 아름다운 진솔한 시 한편이 지하철 어느 역 스크리도어나 혹은 역사 한켠 어느 자리에 게시된 것을 생각한다. 뿌듯해지는 마음, 왜 감사의 마음이 들까? 
생각이나 상상은 그리는 것이라 하였으니 모양도 그리고 그림도 그리고 사람 살아가는 서로 다른 이미지로 그려보도록 장을 마련해주시면 하고 제언한다. 아니 부탁드린다. 그리하여 문화가 시민과 말간 숨을 쉬고 평화의 열매를 추구하는 김포시민, 무엇보다 순수문학을 사랑하는 수준 높은 김포시민이 골드라인을 이용할 때 마음 속 깊은 곳에 혹은 휴대폰에 담아갈 수 있도록 해주시면 너무 감사하겠다. 
여지없이 문화는 민심이 꽃이다. 평화문화1번지 김포시와 김포골드라인이 시문학을 접목하여 수준의 열매가 탄탄이 영근 금쌀처럼 알알이 청량한 포도처럼 일등시민으로 긍지가 될 것이며 “김포의 가치를 두 배” 이상으로 향상시킬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것으로 믿는다. 문학을 사랑하는 시민, 문화와 평화를 추구하는 시민, 통일을 준비하는 김포의 역동적인 삶이 시민의 긍지와 행복으로 귀결될 것이라 결단코 믿어 의심치 않는다.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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