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한재 이목 선생의 기일인 음력 칠월 스물 엿새 날 정간공(貞簡公) 한재(寒齎) 이목(李穆) 선생의 제례가 하성면 가금리 소재 한재당(경기도 지방기념물 제47호)에서 거행됐다.

이날 제례에는 첫 잔을 올리는 제관인 초헌관을 맡은 한재종중회의 이지영 회장, 아헌관을 맡은 이하준 김포문화원장을 비롯해 내‧외빈 100여 명이 참석해 한재 이목 선생의 업적을 추모했다.

조선시대 문신인 한재 이목 선생(1471~1498)은 통진부 동상포면 가좌동, 지금의 하성면 가금리에서 참의공 이윤생의 차남으로 출생·성장했다. 19세의 나이에 진사시에 합격했고, 24세 때에는 연경(燕京)에 유학했으며 25세 되던 연산군 원년에 대과에 장원급제했다.

한재 이목 선생은 바른 말을 잘해 당대에도 명성이 높았으며, 그의 선비사상과 도학정신 그리고 차(茶)에 대한 안목의 깊이를 헤아려보기에 부족함이 없는 다부(茶賦)를 남겨 다부(茶父), 다선(茶仙)이라 추앙받고 있다.

다부(茶賦)는 수십 가지에 이르는 차의 명칭, 생산지, 품질 등을 자세히 기술하고 차의 미묘한 미각이 주는 5공 6덕 7효능까지 설파한 1332자 장문의 시로서, 한국의 다성(茶聖)으로 불리는 초의선사(草衣禪師: 1786~1865)의 동다송(東茶頌)보다 무려 300여 년 앞선 한국 최초의 다서(茶書)다.

경종2년 1722년에 내려진 정간이라는 시호는 곧을 정(貞), 대쪽 간(簡)으로 곧 대쪽같이 곧다는 뜻이다. 이목 선생은 충직하고 강직한 절행으로 후대에 선비들의 칭송을 받기도 했다.

선조 때 중봉 조헌 선생은 역대 충군우국의 표상으로 석탄 이존오, 목은 이색 그리고 한재 이목, 세 사람을 지칭했다.

한재 이목 선생의 후손은 김포에 약 삼십여 명, 전국에 총 삼백 오십 여 명 분포하고 있다. 후손들은 한재 이목 선생을 정성껏 기리고 있는데, 종회원들은 종중에서 봉행하는 불천위 기제사와 시제 등 10건의 제향을 전주, 공주, 김포 등을 오가며 참여하고 있으며, 공주 충현서원과 전주 황광서원에 한재 이목 선생이 배향돼 춘계·추계 서원제에도 참석하고 있다. 또한 매년 6월 첫째 토요일, 한재당에서 김포다도박물관을 주관으로 한 헌다례 행사도 거행하고 있으며, 총회, 이사회 등 종회원 간의 모임도 운영하고 있다.

정간공 한재(휘 목) 종중 이정병 총무는 “전통 제례를 계승하고 숭조 정신을 함양하고자 한다. 다부로 추앙받고 있는 한재 선조의 선비 정신을 후손들에게 고취하는 것도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이재국 경제국장은 “우리지역의 훌륭한 인물이신 한재 이목 선생의 정신을 이어받고, 지속적인 지원을 통해 그 뜻을 높이 선양해 우리의 얼이 잘 계승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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